물질 배우러 뭍에서도 외국인도… 세상에 단 하나뿐인 제주 한수풀해녀학교
차갑고 깊은 바닷속, 뜻대로 되지 않는 잠수와 해산물 채집. 때론 바닷물도 마시고, 때론 허우적거리기도 하면서 학생들은 거친 파도와 씨름하며 평생을 보낸 해녀들의 고단한 삶을 조금씩 이해해 간다. 한수풀해녀학교 제공
그런데 한적하던 어촌 마을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진다. 해녀들의 물질은 벌써 끝났는데 잠수복 차림에 테왁망사리(물에 뜨는 부표에 해산물을 담는 그물을 연결한 도구)까지 챙긴 수십 명이 우르르 탈의장 밖으로 몰려나와서다. 앳된 소녀도 있고 건장한 체격의 남자도 있다. 외국인도 여럿이다. 마을 사람들은 소란이 흐뭇한 눈치다. 작업에 여념 없던 해녀들의 얼굴에도 금세 반가운 웃음이 돈다. 이들은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학교, ‘한수풀해녀학교’ 학생들이다.
○ 지금은 수업 중
목장갑에 호맹이(소라 등을 채집할 때 쓰는 해녀용 호미)까지 챙긴 학생들은 하나둘 바다로 뛰어든다. 산소통은커녕 스노클(숨대롱) 하나도 없는 맨몸이다.
학생들을 둘러보던 임 교장이 기자에게도 신호를 보낸다. 불안한 마음으로 한발씩 내딛자 차가운 바닷물이 잠수복 틈으로 스며든다. 잠수복으로 스며든 바닷물은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는다. 자맥질하는 동안 체온이 높아지면 물도 함께 데워진다. 해녀들이 한겨울 얼음장 같은 바다에서도 물질을 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임 교장은 코로 호흡하지 말고 수면 위로 올라왔을 때 입으로 푸, 하고 숨을 뱉으라고 알려준다.
호오익, 휘익. 해녀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며 입으로 가쁘게 내뱉는 휘파람 같은 숨소리를 제주 사람들은 ‘숨비소리’라고 부른다.
학생들은 자맥질에 여념이 없다. 능숙하게 오리발을 수면 위로 올리며 잠수하는 학생도 있지만 여전히 버둥대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잠수 못 하면 집에 안 보낸다” “부표 너머로 가지 마라” 방파제 위로 올라간 임 교장이 메가폰을 잡고 소리친다. 강사로 나온 해녀들은 잠수가 서툰 학생들에게 시범을 보인다. 바닷속 바위를 잡고 해녀들은 물속에서 자연스레 물구나무를 선다.
○ 해녀들, 선생님이 되다
해녀들에게 여름은 비수기다. 소라나 전복·해삼류 금채기간이기 때문이다. 6월 중순∼7월 말까지 보름 남짓 성게를 채취해 파는 것 외에 물질은 쉰다. 2007년 가을 탈의실 옆 두 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개소식을 연 ‘한수풀해녀학교’가 매년 5월부터 8월 말까지 총 20주 동안 교육을 진행하는 이유다. 해녀문화 보존을 위해 설립된 이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유일한 해녀학교다. 학교 이름은 한림읍의 옛 명칭인 ‘한수풀’에서 따왔다.
40명 안팎의 마을 해녀들은 해녀학교가 첫 입학생을 받은 2008년부터 매주 5, 6명씩 조를 짜서 강사로 변신한다. 하지만 정작 이들은 해녀가 되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양정자 할머니(72)는 “어릴 때부터 놀면서 터득했지, 우린 누가 가르쳐 주고 말고가 없었다”고 한다.
해녀들은 잠수 깊이나 채취량에 따라 상중하군으로 구분된다. 하군 해녀들은 2∼3m까지만 맴돌지만, 상군 해녀들은 10m 이상 들어간다. 하지만 대부분의 해녀들은 채취에 집중하기 때문에 정작 자신이 얼마나 깊은 곳에서, 얼마나 오래 숨을 참았는지 정확히 모른다.
2011년도 말 제주도 해녀는 4881명. 전년보다 114명 줄었다. 그나마 60세 이상이 전체의 80%다. 해녀의 삶과 문화를 익히겠다고 전국 각지에서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학생들이 해녀들에게 각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 해녀학교를 찾은 괴짜 학생들
한수풀해녀학교 학생들이 포구 앞 공터에서 입수 전 준비운동을 하고 있다.
올해 입학생들의 면면은 해녀학교의 또 다른 자랑거리다. 제주도민뿐 아니라 서울 부산 등 타 지역 사람들은 물론 미국 필리핀 중국인도 있다. 직업군도 한의사부터 통역사, 방송작가, 스님까지 각양각색이다.
부산에서 온 임상병리사 김소현 씨(31)는 스킨스쿠버 어드밴스 자격증이 있는 다이버다. 물이 좋아 해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가 누구보다 물질에 빠졌다. 김 씨는 “맨몸으로 그 깊은 바다에서 작업하는 해녀들이 존경스럽다”고 말한다.
재미교포 3세 포토 저널리스트 브렌다 선우 씨도 해녀학교 때문에 제주도에 머물고 있다. 지난해 ‘물때(Moon Tides)’라는 해녀 사진집을 내기도 했다. 그는 “취재만 하다 직접 체험해 보니 거친 바다에서의 채집이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됐다”며 “수업 자체는 즐겁지만, 해녀들의 고단한 삶을 생각하면 마냥 재밌을 수만 없다”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해녀들 물질을 구경하며 자란 제주 토박이도 이곳을 찾는다. 한경면 금등리에서 온 임을화 씨(49)는 “잠수회 해녀로 등록돼 있지 않으면 같은 어촌 사람이라도 입수 자체를 막는 곳이 많다”며 “모두에게 문을 열고 장비사용법, 응급처치부터 차근차근 교육해 주는 곳은 이곳뿐”이라고 말한다.
○ 한수풀해녀학교의 꿈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다는 사실에 적응하자 공포심이 덜해진다. 기자는 조심스레 부표 아래까지 가본다. 수심 5∼6m 지점이라는 표시다. 까마득한 바닥에 해녀학교에서 갖다 둔 해녀상이 있다. 옆에는 정낭(제주 전통가옥에서 대문 대신 걸쳐놓은 굵은 나뭇가지)도 있다. 임 교장은 “해녀학교에 왔으면 바닷속에 놓인 해녀상과 정낭까진 보고 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제 2시간여 집중 교육을 바탕으로 기자도 성게 채집에 직접 나서본다. 바닷속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미끄덩한 파래가 좌우로 흔들리고, 산호 사이로 멸치 쥐치들이 민첩하게 움직인다. 바위 틈새에 빼곡히 박힌 성게도 보인다.
해녀들의 시범을 떠올리며 호맹이로 성게를 힘껏 내리찍는다. 호맹이질 한 번에 벌써 숨이 차 죽을 것 같다. 몸이 균형을 잃고 위로 솟구친다. 정신을 차리니 수면 위다. 실컷 삼킨 바닷물을 내뱉기 위해 뒤늦게 푸, 푸, 숨비소리 흉내를 낸다.
아름다운 해변이 있는 것도, 올레길이 지나는 것도 아니지만 해녀학교 덕에 귀덕2리엔 활기가 감돈다. 함께 주말마다 물질하고, 해녀들의 일상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보며 학생들은 거친 바다 물살을 헤치며 일하는 해녀들의 삶을 이해해 간다. 깊은 바닷속에서 이들을 견디게 한 버팀목은 특별한 기술이나 체력이 아니라 어머니, 아내, 가장으로서의 힘이란 것도 함께.
수업을 마치고 뭍으로 올라온 학생들은 소라 성게 등과 함께 한 솥 삶아온 감자를 먹으며 떠들썩해진다. 임 교장이 학생들에게 바라는 것은 하나뿐이다.
“우리 학생들을 제주 해녀문화의 증언자들이라고 생각해요. 언젠가 이들이 각지로 흩어졌을 때 짠물 먹어가며 체험한 오늘을 잊지 않고 ‘제주 해녀’가 누구인지 사람들에게 말해주겠지요.”
학생들은 수업 때마다 부르는 ‘해녀항일노래’를 다같이 흥얼거린다. ‘우리는 제주도의 가이없는 해녀들…추운 날 더운 날 비가 오는 날에도/저 바다 물결 위에 시달리던 이내 몸….’
평화로운 어촌 포구 너머로 천천히 해가 진다.
제주=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