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곳에 오르려는 인간의 욕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구약성서에 나오는 바벨탑이다. 대홍수가 휩쓸고 지나간 뒤 하늘에 닿는 건물을 지어 보겠다는 인간의 교만과 어리석음의 산물이지만 얼마의 높이로 지었는지는 기록에 나오지 않는다. 위치는 유프라테스 강변의 바빌론 지역 바그다드 남쪽으로 추정된다. 인류 최초의 마천루(摩天樓) 건설 시도가 중동에서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못다 한 선조의 꿈을 이루려는 듯 중동 산유국들이 인간이 살기 힘든 사막에 초고층 빌딩을 다투어 세우고 있다. 2년 전 첨탑을 포함해 높이 829.84m(162층)로 지어진 두바이의 부르즈 칼리파가 완공돼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등극하자 중동의 맹주를 자부하는 사우디아라비아는 홍해 연안 지다에 무려 1000m 높이의 킹덤타워를 짓기 시작했다. 실제로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두바이,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서안지역의 해변은 초고층 건축의 경연장이었다. 부르즈 칼리파 꼭대기에서 보면 주변 건물들이 성냥갑처럼 올망졸망하다. 킹덤타워가 완공된 뒤 그 위에서 바라본 세상의 모습은 어떨지 궁금했다.
▷중동의 마천루 경쟁은 높이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두 마리의 뱀이 서로 뒤엉키듯 올라가는 형상을 한 인포시스 빌딩의 조감도를 보고 있자면 도대체 엘리베이터를 어떻게 설치할 것인지 의문이 든다. 건물 내부를 금으로 도배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아부다비의 에미리트 팰리스에는 금괴 자판기까지 있어 1g, 5g, 10g, 1온스 등 4종류의 금괴와 6종류의 금화를 판매하고 있다.
▷10일 방문한 카타르 도하 역시 국민소득 8만9320달러의 부국(富國)답게 키다리 건물이 즐비했다. 카타르의 왕족과 실권자들이 국가에서 돈을 빌려 건물 올리기 경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건물의 공실률은 30%를 상회한다는 것이 현지인들의 설명이다. 아산정책연구원 장지향 중동센터장은 “통치자로서 위엄과 권위를 과시하고 주변 국가와의 국력 경쟁에서 우위를 점한다는 차원에서 높은 건물을 짓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에겐 세금 한 푼 받지 않고 교육을 포함해 최고의 복지 혜택을 주니 불평하는 사람도 적다. 초고층 건물이 즐비한 산유국 국민이 순종적인 반면 가난한 중동 국가들에서 혁명과 반(反)국가 운동이 자주 일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 같다. ―도하에서
하태원 논설위원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