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시장 이야기 /김종광 글·구보서 그림/280쪽·1만4800원·샘터
1905년 우리나라 최초의 사설 상설시장으로 창립된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 골목 가득한 음식 온기에는 107년간의 서민들의 삶과 애환이 담겨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1960년대 말 광장시장을 운영하는 광장주식회사의 김철환 전무는 대한농구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었다. 김 부회장이 여자농구 대표팀 전원을 광장시장의 음식점에 초대해 회식을 했는데 시장번영회 회장 부회장 총무 등 시장 상인들도 자리에 함께했다.
첫 만남은 어색했다. 상인들의 눈에 당시 성인 남성의 평균 키를 훌쩍 넘는 선수들은 낯설었다. 대표팀의 박신자와 주희봉의 키는 175cm, 신항대는 174cm였다. “어떻게 여자가 허벅지, 장딴지를 훤히 내놓고 뛰어다니느냐”면서 혀를 끌끌 차는 상인도 있었다.
시장은 이야기의 보고(寶庫)다. 1905년 광장주식회사가 창립되면서 첫발을 뗀 종로구 예지동 광장시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설 상설시장으로 역사가 100년이 넘는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상인들의 상권 침범을 지켜 낸 ‘민족 시장’이었고, 광복과 6·25전쟁으로 이어진 혼란기에는 서민의 삶을 지탱해 준 일터이자 밥줄이었다. 1300개가 넘는 크고 작은 점포에서 나날이 벌어지는 일상에는 서민의 삶과 애환이 담겨 있다.
장편소설 ‘군대 이야기’ ‘똥개 행진곡’ 등을 쓴 저자는 이 거대한 이야기의 창고를 때론 논픽션으로, 때론 픽션을 가미해 생생하게 복원한다. 다큐멘터리나 에세이, 아니면 소설로도 읽히는데 아무러면 어떤가. 시장을 중심으로 한국의 현대사가, 필부필부(匹夫匹婦)의 삶이 감칠맛 나게 펼쳐진다. 저잣거리에서 건져 낸 보물과도 같은 이야기들이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