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조작 확인땐 4500조 파생상품 시장 증발 사태 올수도
특히 전문가들은 전 세계를 강타한 유럽 재정위기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았던 한국 금융시장이 실체가 뚜렷하지 않은 CD 금리 담합 의혹에 발목이 잡혀 휘청거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악의 경우 이번 사태가 금융 선진국인 영국 금융시장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은 리보(LIBOR·런던 은행 간 금리) 조작 사태와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증시에서 은행, 증권주 충격
특히 금융업종에 대한 외국인투자가들의 팔자 움직임이 두드러졌다. 18∼20일 외국인들은 국내 증시에서 2270억 원어치의 순매수를 보였지만 은행주는 68억 원어치를 팔아치운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은행주 하락은 리보 사태에 따른 전 세계적인 금융업종에 대한 우려감에 CD 금리 담합 의혹이 겹친 결과로 분석했다. 이번 조사의 여파로 CD 금리가 낮아지면 이와 연동한 기업 및 가계대출 금리도 떨어져 은행의 순이자 마진이 감소하고, 이는 곧 은행의 실적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예상에 따른 것이다.
공정위의 조사 결과에 따라 은행들이 막대한 과징금을 부과받게 되거나 그동안 과도한 이자를 부담했다는 소비자들의 집단소송에 휘말리면 상황이 더 나빠질 가능성도 있다. 3월 말 기준으로 국내 은행의 총 원화대출 1080조 원 중 324조 원(30%)이 CD 금리 연동 대출이다. 0.1%포인트 금리를 올리기로 담합했다면 은행이 1년에 3240억 원의 부당이득을 얻게 된다. 만일 0.3%포인트 금리를 올렸다면 부당이득 액수는 연간 1조 원에 육박한다. 개인 편에서 보면 CD 금리 연동 대출상품으로 1억5000만 원을 빌렸을 때 금리 담합으로 대출이자가 1년 동안 0.1%포인트 높게 유지됐다면 연간 이자 부담이 150만 원 더 늘어난다.
이에 따라 시민단체인 금융소비자연맹(금소련)은 은행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담합이 사실로 밝혀지거나 CD 금리가 폐기될 경우 국내 파생상품 시장에서 외국 금융기관이 빠져나가는 등 큰 혼란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된다. CD 금리는 관련 파생금융상품의 가격 결정에 영향을 주는 핵심 변수이다. 따라서 CD 금리 담합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면 CD 금리를 기초자산으로 한 약 4500조 원 규모의 파생상품 시장에 큰 파장이 닥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CD 금리를 대체할 만한 지표가 없고 새로 만든다고 할지라도 신뢰가 어려워 재계약 대신 대량 청산이 이뤄질 수도 있다. 현재 국내 전체 파생상품 시장이 7000조 원임을 감안하면 절반이 넘는 파생상품 시장이 증발하는 사태가 생길 수도 있다.
○ 한국 금융 대외신인도에 타격
나란히 앉은 공정위장과 금융위장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담합조사를 주도하는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왼쪽)과 담합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밝힌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20일 국회에서 나란히 앉아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수요가 줄어들면 채권 가격이 떨어지고 채권 금리는 상승한다. 채권 금리 상승은 국내 금융기관의 조달 금리가 그만큼 올라간다는 의미다. 집단소송 리스크가 해결되지 않으면 금융회사의 신용등급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는 현재 국제 금융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리보 금리 조작 사건에 비춰 볼 때 충분히 우려할 만한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다. 리보는 영국은행연합회(BBA)가 20개 은행에서 은행 간 차입금리를 받아 최고·최저 4개 금리를 제외한 나머지를 평균 내 발표하는 단기금리다.
이 결과 바클레이스 회장에 이어 최고경영자(CEO)가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한 상태다. 모건스탠리는 리보 조작 사건에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는 12개 글로벌 대형 금융회사가 벌금과 소송에 따른 배상액 등으로 부담해야 할 금액이 220억 달러(약 25조3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분석했다.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김철중 기자 tnf@donga.com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