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 추세 속 연구·개발 노력 현장
서울 강동구 성내동 GS나노텍 박막전지연구소에서 연구원들이 세라믹 패키지 속에 탑재된 박막전지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위 사진). 아래 사진은 연구소에 설치된 전지 특성 측정장비. 홍진환기자 jean@donga.com
코닝은 영원히 호황을 이어갈 것 같았던 광섬유 사업에 100억 달러(약 11조4000억 원)를 과감히 투자한 터였다. 과잉 투자는 고스란히 손실로 이어져 55억 달러(약 6조2700억 원) 적자를 냈다. 경영난에 몰린 코닝은 비용 요소를 샅샅이 찾아내 감축했다. 그러나 매출액의 10%를 차지하는 연구개발(R&D) 투자는 한 푼도 줄이지 않았다. 오히려 R&D 투자의 3분의 1에 ‘인내(忍耐) 자금’이라는 이름을 붙여 중장기 연구에 집중 투자했다.
이후 액정표시장치(LCD) TV용 유리기판 기술 경쟁력을 확보한 코닝은 이 시장에서 점유율 50%를 돌파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박막전지의 외관을 현미경으로 검수하는 하는 모습. 홍진환기자 jean@donga.com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에 따르면 2010년 매출액 상위 10대 기업의 R&D 투자 증가율은 23.4%로, 같은 기간 21.2%에 그친 전체 대기업보다 2.2%포인트 높았다. 같은 해 전체 대기업의 R&D 투자비용 24조2129억 원 가운데 62%에 이르는 15조1454억 원을 상위 10대 기업이 차지했다.
특히 국내 기업들은 1999년 일본의 10분의 1에 불과했던 투자규모를 2009년 6분의 1 수준으로 좁히면서 제조업 강국 일본을 따라잡고 있다. 임상혁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본부장은 “기업의 R&D 투자와 국가 경제성장은 밀접한 관계를 나타낸다”며 “글로벌 경기 침체로 투자가 위축된 2009년 우리 기업들이 R&D 투자를 늘려 201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1개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6.2%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 불황기 R&D 투자 고삐 죄는 주요 기업
올해도 재계 3, 4위(공기업 제외)인 SK그룹과 LG그룹이 불황 후 다가올 초(超)성장의 기회를 잡기 위해 역대 최대 규모의 R&D 투자를 단행한다. 반도체 회사 SK하이닉스를 인수한 SK그룹은 올해 R&D 분야에 역대 최대 규모인 19조1000억 원을 투자한다. 지난해의 두 배를 웃도는 것이다.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과 현대·기아자동차 그룹은 올해 각각 13조6000억 원과 5조1000억 원을 투자한다. 특히 삼성은 기업의 R&D 경쟁이 앞으로는 기존의 산업분야별 벽을 허무는 양상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고 이에 대비하고 있다. 기존 사업 분야에서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등 차세대 기술에 투자를 집중하는 한편, 삼성SDI를 중심으로 자동차부품 사업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은 차량용 반도체 사업을 진두지휘하는 동시에 GM, BMW, 폴크스바겐 등 해외 자동차업계와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앞으로 다가올 전기차, 연료전지차 시장에 대비한 연구에 주력하는 동시에 독일, 미국, 일본, 중국, 인도 등 주요 거점지역에 글로벌 R&D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현지 시장과 소통하는 R&D 전략으로 글로벌 톱 5의 위상을 지켜나간다는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불황기 R&D 전략은 ‘신성장 산업 투자는 지속적으로 하되 외부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개방형 R&D에 주력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미국 P&G는 외부의 기술자원을 자신의 R&D 역량으로 활용하는 C&D(Connect & Develop) 전략을 통해 성장을 이뤘다. 회전 막대사탕 장난감 기술을 활용해 기존 제품의 10분의 1 가격에 불과한 값싼 전동 칫솔을 개발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김용석 기자 nex@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