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남편과 맞서 싸울때만 정당방위라니…‘40년 학대’ 남편 잠든 후 살해한 아내, 2심서도 중형딸 “그 고통, 법이 너무 몰라”
▶본보 6월 28일자 A8면
남편 살해 부른 가정폭력… 모녀의 SOS, 아무도 듣지 않았다
사건이 일어난 지난해 8월 남편은 A 씨에게 “눈을 찔러 소경을 만들까, 배를 난도질할까”라며 부엌칼을 휘둘렀다. A 씨가 애원한 끝에 남편은 방 돗자리 아래에 칼을 넣고 그 위에서 잠들었다. 다리 한쪽을 아내 배 위에 올려놓은 채였다. A 씨는 ‘나가면 죽인다’는 협박을 받은 터라 한동안 가만히 있다 넥타이로 남편의 목을 졸랐다.
남편이 칼부림을 멈추고 잠자는 무방비상태였기 때문에 A 씨의 행위는 정당방위가 아닌 명백한 살인이라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정 불안하면 이웃이나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는 등 합법적으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는 점도 고려됐다.
물론 법원은 당장 위험이 존재하지 않는데도 정당방위가 쉽게 인정되면 범죄자들이 고의로 살인하고도 ‘그러지 않으면 내가 죽을 게 뻔해 어쩔 수 없었다’며 합리화하는 부작용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재판이 가정폭력 사건의 특수성을 충분히 감안해 이뤄졌는지는 의심스럽다. 1, 2심을 거치면서 A 씨 변호인은 재판부에 가정폭력 전문가가 재판에 참여하도록 여러 번 건의했지만 번번이 기각됐다.
A 씨의 딸은 판사와 검사로부터 “왜 아버지의 폭력에 적극 대처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말문이 막혔다고 했다. “아버지의 주먹질이 시작되면 숨죽인 채 맞아야 하고 경찰에 신고했다간 끔찍한 보복을 당하는 게 어릴 때 터득한 이치인데 뭘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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