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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 여성 살해범은 40대 주민… “수사 혼선주려 손목 버려”

입력 | 2012-07-24 03:00:00

강도전과 미혼남 이틀전 조사받고 잠적했다 체포
시신 상의 벗겨진채 발견… 경찰 “展示살인 가능성”




제주 올레 코스에서 발생한 40대 여성 살해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범행 발생 12일 만인 23일 긴급 체포됐다. 실종 여성의 시신도 발견됐다.

제주동부경찰서는 올레 탐방객 강모 씨(40·여·서울 노원구)를 살해한 혐의로 강모 씨(46)를 긴급체포해 범행을 자백 받고 시신을 발굴했다. 경찰은 이날 오후 6시 40분경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리 제주올레 1코스인 말미오름(해발 146m) 부근 농로 옆 15m 지점 대나무 숲에서 피해여성 강 씨의 시신을 찾았다.

○ “소변 보다 우발적 살인?” 신빙성 떨어지는 용의자 진술

경찰은 용의자 강 씨가 “대나무 숲에 묻었다”는 말을 했다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을 번복하면서 수사에 혼선을 빚었으나 2시간 동안 수색한 끝에 암매장된 시신을 발굴했다. 피해자는 상의가 벗겨진 채 흙으로 덮여 있었다.

용의자 강 씨는 경찰조사에서 “소변을 보고 있는데 걸어오던 여성이 나를 성추행범으로 오인해 전화로 신고하는 줄 알고 살해하기로 마음먹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강 씨가 피해여성을 목 졸라 살해한 뒤 현장에 놔뒀다가 2, 3시간 후 500m가량 떨어진 대나무 숲으로 옮긴 뒤 흙으로 덮었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강 씨는 사체유기에 대해 “말미오름 주변에 대한 경찰의 수색이 좁혀지자 범행 장소를 다른 곳으로 보이기 위해서 손목을 잘라 운동화와 함께 놔뒀다”고 진술했다. 그는 경찰조사에서 19일 오후 10시경 문구용 칼로 손목을 잘랐다고 했다. 피해자의 배낭은 시신에서 2m가량 떨어진 지점에서 발견됐다.

용의자 강 씨는 미혼으로 강도 전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수사 초기부터 경찰의 용의선상에 올라 참고인 조사를 받고 풀려난 뒤 잠적했다가 이날 오전 6시 10분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되는 성산읍 시흥리에서 붙잡혔다. 강 씨는 특별한 직업이 없이 막노동을 하며 생활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뇨병을 앓고 있는 강 씨는 사건 당일 말미오름을 오르기 위해 현장에 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피해여성이 실종된 12일 오전 올레 1코스 안내소 부근에서 용의자 강 씨가 쉬고 있었다는 목격자의 진술을 확보해 수사를 벌여 왔다. 경찰은 21일 강 씨를 임의동행 형식으로 불러 참고인 조사를 했다.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은 했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없어 일단 풀어줬다.

피해자의 오른손이 발견되기 전날인 19일 강 씨가 다른 사람의 농사용 차량을 빌린 사실을 확인한 경찰은 그가 풀려난 직후 잠적하자 용의자로 보고 추적했다. 강 씨는 처음에는 범행을 부인했지만 경찰이 진술의 허점을 파고들면서 압박하자 이날 오후 범행 사실을 자백했다. 경찰은 자백을 토대로 시흥리 대나무밭 주변을 뒤져 시신을 찾아냈다. 강 씨는 취재진에 “재산도 아니고 생명을 빼앗아 돌려 드릴 수 없어 죄송하다. 제 생명을 달라면 제 생명이라도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 [채널A 영상] 살해범 어머니 “이런 일이 닥치니 믿기지 않아”

○ ‘전시(展示)살인’ 가능성


경찰은 강 씨의 범행이 ‘전시살인’의 일환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전시살인은 자신이 누군가를 살해했다는 것을 알리는 방식의 범죄로 스릴러 영화에서 자주 등장한다.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인격 장애)가 살인을 저지른 뒤 시신이나 시신의 일부를 공개하면서 자신의 심리 상태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국내에서는 2000년 10월 전북 고창에서 초등학교 5학년 여학생이 살해된 뒤 십자가 형태로 팔을 벌린 모습으로 무덤 위에서 발견된 것이 최초의 전시살인 사례로 꼽힌다. 당시 범행을 저지른 김해선(35)은 중학교 중퇴 학력에 전과(7범) 때문에 사회에 불만을 품고 있던 반(反)사회 성향 인물로 이후 두 건의 살인을 더 저지른 뒤 붙잡혔다.

이번 올레길 사건 용의자 강 씨는 범행 장소인 올레길에서 18km 떨어진 버스정류장에 절단한 피해자의 오른손과 신발을 놓고 갔다.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최초 실종 장소에서 떨어진 곳에 단서를 남긴 것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사이코패스적 특징을 보인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 때문에 경찰은 2009년 제주에서 발생한 ‘어린이집 여교사 살인사건’이 강 씨와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수사할 예정이다.

수도권 지검의 한 검사는 “사이코패스형 범죄자는 자신의 범죄를 과시하려고 시신을 전시하거나 눈에 띄는 장소에 유기한다고 알려져 있다”며 “그러나 내면 심리를 들여다보면 수사에 혼선을 불러일으키고 수사팀의 움직임을 가늠해 보는 등 오히려 자신의 불안한 심리 상태를 잊기 위해서인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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