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기 경북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저자
美 풍요속 잉태된 폭력의 씨앗
그래서인지 이번 사건으로 미국인들이 받은 충격은 이전에 발생했던 총기난사 사건 때보다 더 큰 것 같아 보인다. 상식적으로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한 곳과 사람에 의한 범행이었기 때문이다. 범인은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24세 백인 청년이다. 범행은 치밀하게 계획된 것으로 보이나 속도위반으로 티켓 한 번 받은 것을 빼고는 전과가 전혀 없고 박사과정을 다니다 그만둔 이력만 봐서는 그런 일을 저지를 사람이라고 상상하기 힘든 평범한 수재다.
주말 CNN은 총기난사가 부모를 동반하면 13세 어린이도 관람할 수 있는 영화관에서 발생했다는 점과 희생자 중 어린이들도 있었다는 점에서 뉴스를 전해 들은 아동들의 심리가 어떨지에 대해 심리학자와 대담하는 시간을 가졌다. 앵커는 심리학자에게 이 잔인한 폭력 뉴스를 과연 아이들에게 알려줘야 하는지 물었는데, 심리학자는 “어린이들이 접하는 모든 미디어(만화, TV, 영화 등)의 약 25∼30%가 이미 폭력에 노출된 마당에 무슨 그런 어리석은 질문이 있느냐”고 답해 앵커를 무안하게 했다.
범인이 얼마나 폭력물에 노출되고 탐닉했었는지는 현재로선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범인이 배트맨에 광적으로 심취하고 만화 속 악당 ‘조커’처럼 머리를 붉게 염색했고 자신이 ‘조커’라고 외쳤다는 증언이 있다. 범행 당시에도 검은 옷에 전투 헬멧, 마스크, 레깅스 등 영화 속 악당과 비슷한 복장을 했다. 그가 탐닉했던 배트맨 만화에는 극장 안에서 관객들에게 총기를 난사하는 장면도 나오고, 이번 개봉 영화에도 운동경기장에서의 학살 장면이 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범인이 나온 고교 친구의 말을 인용해 “(범인이) 영웅물과 악당을 유독 좋아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미디어 폭력성 짙은 한국도 위험
한마디로 ‘콜로라도의 악마’는 예술을 빙자하든 단순한 재미를 노렸든 얄팍한 기성세대의 폭력이 깃든 상품과 상술에 의해 키워지고 있었다. 특히 공동체의 결속이 극도로 약화된 미국 사회에서 외로움에 찌든 청소년들이 이런 문화상품의 소비자가 되었다가 어느 순간 악마로 돌변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 이는 문화상품의 폭력성이 미국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높은 한국 사회에도 커다란 함의를 던져준다.
김광기 경북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