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근형 스포츠레저부 기자
당시 저는 사전만큼 두꺼운 여행 책과 씨름하고 있었지요. 그날도 런던의 한 프랑스 음식점을 찾고 있었습니다. 긴장한 표정의 동양 청년이 안타까웠는지 길 가던 노신사 한 분이 제 어깨를 두드렸습니다. 친히 “레스토랑 앞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하더군요. 어릴 적 “낯선 아저씨가 사탕 주겠다고 하면 절대 따라가지 마라”라고 배웠기에 덜컥 겁이 났습니다. 하지만 기우였습니다. 노신사는 택시처럼 빠르고 정확하게 식당 앞까지 데려다주고는 총총히 걸음을 옮겼습니다. 교과서에서만 보던 ‘신사의 나라’ 영국을 체험한 것이지요.
9년이 흐른 2012년. 저는 동아일보 런던 올림픽 특별취재팀의 일원으로 런던과 재회했습니다. 8시간의 시차 탓에 밤낮이 따로 없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저녁식사도 뒤늦게 해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23일 저녁 취재팀은 런던 소호의 한인 식당을 찾아가고 있었지요. 런던 유경험자이자 막내인 저는 길 찾기를 전담하고 있습니다. 골목골목을 헤매다 선배들의 따가운 눈빛 속에 길가는 한 청년을 불러 세웠습니다. “excuse me?”
이처럼 런던에서 한국 정보기술(IT)과 만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올림픽 파크 주변의 웨스트필드 쇼핑몰에 있는 대형 삼성관은 시민들로 북적입니다. 런던 올림픽조직위원회가 각국 기자들에게 대여해준 현지 휴대전화도 다름 아닌 삼성 스마트폰입니다. 과거 해외에 나가면 거리에 널린 ‘한국산 자동차’를 보며 자부심을 느꼈다지요? 이제는 ‘한국 IT 제품’이 이를 대체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게다가 한국 IT가 영국 신사의 품격을 높이는 데 한몫하는 장면까지 체험하니 자부심은 두 배입니다.
유근형 스포츠레저부 기자 noe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