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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세상/위정현]13년 만에 막 내린 ‘스타리그’

입력 | 2012-07-25 03:00:00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스타리그 13년의 역사가 막을 내렸다. 서울 용산 e스포츠 경기장 앞에서 관중들은 아쉬움에 쉬이 떠나지 못했다. 팬들은 임요환 등 한때를 풍미했던 대스타의 이름을 떠올린다. 아마 20년 후 어느 날 이들은 자신의 아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빠가 대학생일 때 친구들과 항상 플레이하고 환호하던 국민적 게임이 있었단다. 그것은 바로 스타크래프트였어.” 아들은 멀뚱하게 눈을 뜨고 물을 것이다. “그게 뭔데요?” 아들에게 스타크래프트는 할아버지 세대의 갤러그처럼 기억도 희미한 전설이리라.

13년여 세월 동안 스타크래프트는 대한민국의 신화였다. 전 세계 판매량의 절반 수준인 450만 장이 한국에서 팔렸다. e스포츠라는 새로운 스포츠 장르가 등장하고 프로게이머라는 직업도 생겼다. 당구장은 스타크래프트를 앞세운 PC방에 밀려 자취를 감추었다. 2006년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프로게이머는 장래 희망 직업 1위였다.

스타크래프트는 세대 간 문화충돌을 낳기도 했다. 2004년 부산 광안리 결승전에는 무려 10만여 명의 젊은이가 운집해 결승전 상황을 지켜보았다. 이 자리는 선거를 위한 유명 정치인의 연설회도, 인기 아이돌 가수의 공연도 아니었다. 단지 게임 하나의 결승전이 열렸을 뿐이다. 기성세대에는 의미조차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코드에 불과한 스타크래프트 화면을 지켜보면서 젊은이들은 때로는 환성을, 때로는 절망의 탄식을 내뱉었다. 프로게이머의 키보드나 마우스 조작 하나 하나에 관중들은 최면에 걸린 것처럼 끌려다녔다. 이 자리에서 대한민국은 스타(크래프트) 세대와 비스타 세대로 양분되었다.

스타크래프트는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하는 한국 온라인게임의 초석을 다지기도 했다. 온라인게임이 산업이 되기 위해서는 대량의 유저가 필요했다. 키보드와 마우스를 자유자재로 움직여 게임을 할 수 있는 숙달된 유저가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이때 스타크래프트는 PC방을 통해 수백만 명의 젊은이를 훈련시켜 산업예비군을 양성해 주었다. 리니지와 같은 온라인게임은 이들 준비된 유저를 흡수해 산업으로 도약했다. 만약 당시의 산업예비군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온라인게임 산업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지만 한국 온라인게임은 스타크래프트에 큰 빚을 지고 있다.

그러나 세상에 영원이란 없는 법이다. 스타크래프트의 뒤를 이어 서버 기반의 온라인게임이 세상을 뒤흔들었다. 이어 스마트폰 혁명을 등에 업고 소셜 게임과 스마트폰 게임이 유저를 빼앗아 갔다. 마침내 개발사인 블리자드는 스타크래프트의 뒤를 이은 후계작 스타크래프트2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로써 스타크래프트가 존속할 수 있는 기반은 모두 사라졌다. 2012년 7월 17일, 스타크래프트는 마지막 리그전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스타크래프트를 떠나보내면서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 먼 훗날 아빠의 추억을 들은 아들이 물을 것이다. “아빠, 스타라는 게임 정말 대단하네. 이런 게임을 한국이 만들 수 있었다는 게 정말 대단해.” 아빠는 갑자기 뒤통수를 한 방 얻어맞은 것처럼 말이 막힌다. ‘신나 하는 아들에게 스타크래프트는 한국이 아니라 미국의 게임사가 만든 것임을 솔직하게 말해 주어야 할 것인가.’ 사실 한국은 스타크래프트의 소비국이지 생산국은 아니었다.

한국의 온라인게임이 세계적이지만 스타크래프트보다 더 뛰어난 게임인가를 자문한다면 아무도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다. 우리가 스타크래프트를 보내면서 아쉬워하지만 동시에 마음 한쪽이 부담스럽고 무거운 이유가 여기 있다. 비어 있는 스타크래프트의 공백을 이제 누군가는 메울 것이다. 이 공백에 스타크래프트를 뛰어넘는 한국의 게임이 등장하기를 기대하자.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