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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 칼럼]안철수의 정치, 召命인가

입력 | 2012-07-26 03:00:00


송평인 논설위원

우리 말의 한(恨)은 외국어로 쉽게 번역되지 않는다. 독일어로 직업을 뜻하는 ‘Beruf’도 그런 말이다. 프랑스 사회과학 잡지에서 독일어 Beruf를 프랑스어 ‘Travail’로 번역하면 의미가 안 통한다는 지적을 본 적이 있다. Beruf는 직업을 하나님의 부름에 응하는 것으로 보는 개신교 전통에서 나온 말이다. 가톨릭 국가 프랑스에는 그런 직업관이 없다. 노동시간은 되도록 줄이고 휴가에서 삶의 보람을 찾자는 것이 프랑스인들의 생각이다.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유명한 ‘직업으로서의 정치’란 책을 썼다. 여기서의 직업이 바로 Beruf다. 최근엔 ‘소명으로서의 정치’로 번역한 책도 나왔다. 직업으로 번역하든 소명으로 번역하든 뭔가 부족하다. Beruf는 글자 수에 제한받지 않는다면 ‘소명으로서의 직업’이 정확하다.

큰 의사는 나라를 고친다


직업을 소명으로 보는 관점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어쩌다 보니 자기 직업을 갖는 것이지 ‘내가 아니면 누가 하겠느냐’는 생각으로 직업을 택하지는 않는다. 안철수가 살아온 길은 달랐다. 안철수는 의대에 진학했으나 돈 잘 버는 임상의의 길을 버리고 연구의의 길을 택했다. 의사에서 컴퓨터 바이러스 전문가로 변신한 것은 꼭 필요하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던 백신 프로그램을 새벽마다 일어나 개발한 결과다. 그가 경영에 뛰어든 것은 안철수연구소를 공적기업으로 만들어 그 운영 부담에서 벗어나려는 시도가 각계의 인식 부족으로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중국의 쑨원(孫文)은 ‘소의치병(小醫治病), 중의치인(中醫治人), 대의치국(大醫治國)’이라고 했다. 작은 의사는 병을 고치고, 중간 의사는 사회를 고치고, 큰 의사는 나라를 고친다는 뜻이다. 안철수가 정치의 길에 들어선다면 그것도 정치를 소명으로 느낄 때다.

그가 책 ‘안철수의 생각’에서 밝힌 정책 단상은 나이브한 게 많아 100가지도 더 시비를 붙고 싶을 정도다. 그럼에도 그가 여론조사에 나타나는 국민의 지지 속에서 정치적 소명의 유무를 확인하려는 신중함을 보이는 데는 공감한다. 동양 유교사상에도 명(命)이란 개념이 있다. 공자는 지천명(知天命) 외천명(畏天命)을 말했다. 천명이 실제로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은 아닐 테고, 인내천(人乃天)이니 백성(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일 게다.

내가 보는 안철수는 출마 의도를 숨기고 효과를 극대화하는 출마시기만 저울질할 사람이 아니다. 10년도 전에 동아일보에 초청돼 강연을 한 안철수를 보고 단번에 매료됐다. 그 반듯한 모습과 바른 생각에 ‘젊은 퇴계가 살아 있다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라고도 생각해봤다. 올 3월 서울대 강연에는 휴가를 내고 찾아갔다. 청춘콘서트를 들어보지 않은 나로서는 가슴에 와닿는 말이 많아 학생들처럼 받아 적기에 바빴다.

‘당신도 틀릴 수 있다’


얼마 전 운동을 나갔다가 개천 돌 사이에 잉어가 걸려 파닥거리는 모습을 봤다. 불쌍해서 깊은 물로 보내주려고 꼬리를 잡으려 하니 도무지 잡히지 않았다. 답답해하던 행인 하나가 내려와 잉어의 대가리 부분을 두 손으로 안아 쥐니까 잉어가 가만히 있어 옮길 수 있었다. 정치에도 정치의 격물(格物)이 있다. 방법을 모르면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된다. 안철수가 정치의 격물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불의 성질도 모르면서 불장난한다는 격한 반응까지 있다.

일단은 안철수는 학습능력이 뛰어나고 실수를 통해서도 배우는 현명한 사람이니까 빠른 시간에 정치의 격물을 배울 것이라 믿고 싶다. 출마하려면 이제 최대한 빨리 하라. 안철수는 소통을 강조하면서 ‘내가 틀릴 수 있다(I may be wrong)’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높이 평가했다. 우리에게도 대선 전까지 ‘당신이 틀릴 수 있다(You may be wrong)’고 말할 기회를 충분히 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대선이 4개월 3주밖에 안 남았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