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 역사상 가장 치사한 전투’라는 카피를 앞세워 최근 개봉한 할리우드 코미디 영화의 내용이다. 두 주인공은 정보기관원의 지위를 남용해 민간인을 도청하는 불법사찰을 자행한 셈이다. 한마디로 관객에게 웃음을 주기 위한 황당한 설정이다. 도청은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몰락을 이끈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은 민주당사 도청사건에서 비롯됐다. 워터게이트 사건 훨씬 전부터 닉슨의 백악관에서는 정적을 상대로 한 뒷조사와 도청을 자행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야 도청이 대통령을 물러나게 할 만큼 위중한 사안이지만 북한에선 당국의 도청이 빈번하게 이뤄진다. 평양을 방문한 남한 사람들의 호텔방은 사방이 도청장치라고 생각하면 된다. 고위층이 라이벌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으로도 활용된다. 최근 이영호 북한 인민군 총참모장이 전격 숙청된 데는 도청이 빌미를 제공했다고 한다. 그는 측근과 대화하다 “자기 아버지(김정일)는 바깥세상을 몰라서 개방을 안 한 줄 아느냐”고 김정은의 현실인식에 불만을 터뜨렸다가 경쟁관계인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 측의 도청에 딱 걸렸다는 것이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