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27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북한 인권운동가 김영환 씨를 중국 공안 당국이 고문했는지 여부에 대해 답변하고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27일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김 씨 일행이 3월 29일 체포될 당시 함께 활동했던 동료 L 씨는 중국 요원들의 기습 검거 현장에서 도망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L 씨는 여권을 빼앗겨 한국으로 들어오지 못한 채 중국 내 한국 공관의 신변 보호를 받으며 모처에 은신해 왔다.
중국 측은 김 씨를 취조할 당시 L 씨의 안전 문제를 언급하며 “중국 내에서의 불법 활동 내용을 있는 대로 실토하라”고 협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씨는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내가 (중국 당국으로부터) 협박당할 때 그 동료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고 말했다. 이는 중국 당국이 김 씨에게 전기고문 같은 신체적 가혹행위와 함께 동료들이 받게 될 신변의 위협을 앞세워 정신적인 압박을 가했음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김 씨는 “(L 씨가) 아직 중국에 있지만 며칠 내에 한국에 들어올 것으로 안다”고 했다. 김 씨의 지인도 “중국이 김 씨를 석방하면서 그와 함께 문제가 됐던 다른 사람들의 문제도 다 정리했다고 들었다”며 “이제 (구금시설에) 남아있는 우리 국민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한편 김 씨가 중국에서 전기고문까지 당한 이유에 대해 ‘북한이 배후에 있기 때문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2003년 김 씨와 같은 국가안전위해죄로 체포돼 1년 6개월간 구금됐던 정베드로 북한정의연대 대표는 27일 “사흘 이상 잠을 안 재우고 옆방의 때리는 소리를 들려주며 위협하긴 했지만 실제로 때리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같은 해 산둥(山東) 성에서 탈북자를 돕다가 체포된 북한인권운동가 최영훈 씨도 “주로 같은 방의 중국인 재소자들이 구타를 하고 간수들은 못 본 척하는 식이었다”고 했다.
이들의 사례에 비춰 보면 김 씨가 당한 전기고문은 이례적으로 가혹한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 국가안전보위부로부터 정보를 받은 중국이 김 씨를 탈북 및 북한 민주화의 배후로 지목하고 정보를 캐내기 위해 무리수를 두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편 중국 공안당국은 구금시설에서 한국인과 탈북자를 다른 외국인과 차별대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인권운동가는 “미국인 같은 서양인은 A급, 일본인은 B급, 한국인은 C급, 탈북자는 D급으로 분류해 대우한다는 것이 정설”이라며 “식사와 수감되는 방의 크기, 처우 등에서 모두 차이가 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탈북자들의 사정은 더욱 열악하다. 북한인권정보센터에 따르면 2003년 이래 탈북자들은 중국 구금시설에서 총 2606건의 인권침해를 당했으며 이 중 폭행과 고문이 174건이다. 유형별로는 구타가 125건으로 가장 많았고 전기충격기·전기곤봉을 이용한 고문이 25건이었다. 공중에 매달기, 동물을 이용한 위협, 성적 학대 등도 보고됐다.
정치권과 시민단체는 중국에 대한 정부의 소극적 대응을 질타하고 있다. 구체적인 고문 내용이 밝혀지고 있는데도 정부가 중국에 항의조차 못하는 것은 고질적인 대중 ‘저자세 외교’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27일 김 씨의 고문과 관련해 “김 씨 본인이 확인할 사항”이라며 사실관계에 대한 공식 확인을 거부했다. 향후 대응을 묻는 질문에도 “중국 측에 재조사를 요청해 놓은 만큼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는 기존의 설명을 되풀이했다. ‘중국의 답변을 기다리는 것 말고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조치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아무런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어 “외교부와 정보당국이 사전에 다 알고 있었으면서도 한중 외교 마찰이 부담스러워 조용히 처리하려 했다”며 “외교부는 당장 김 씨가 중국에서 겪었던 일들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시행하고, 조금의 문제라도 발견된다면 정부 차원의 강력한 항의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탈북난민구출네트워크와 북한인권단체연합회 등 북한인권 관련 4개 단체는 서울 종로구 주한 중국대사관 앞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중국 정부에 사과 및 재발 방지를 촉구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고성호 기자 sung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