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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칼럼/조성기]악소문 퍼뜨리는 ‘미움 바이러스’

입력 | 2012-07-28 03:00:00


조성기 소설가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보면 우리 인간이 얼마나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약한가를 실감케 하는 일화가 나온다. 어린 주인공 마르셀은 자신이 존경해 마지않는 작가가 좋아하는 여배우 베르마의 연극 공연을 관람하지만 실망한다. 집으로 돌아와 저녁 식탁에서 연극 관람평을 솔직하게 털어놓지만 아버지와 식사에 초대된 손님 노르푸아 씨는 베르마의 연기에 대해 온갖 수식어를 동원하며 극찬한다.

다음 날 신문에서도 베르마의 연기를 극찬하는 평이 실린다. 결국 마르셀은 자신의 생각을 바꾼다. 베르마의 연기를 극찬하고 다니게 되는 것이다. 애초에 가졌던 평가를 주변 사람들의 평가가 바꾸어 놓은 셈이다.

이런 예는 미술과 문학, 건축 등 다른 예술 작품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자신이 읽은 소설이 처음엔 실망스럽다고 느꼈다가 평론가들이 극찬해 마지않는 것을 보면서 평가를 바꾸고 그 소설이 명작이라고 선전하고 다니는 경우가 많이 있다. 한국의 명작 소설로 꼽히는 작품 중에도 이런 소설이 꽤 있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에 대해 처음에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주변 사람들이 자꾸 부정적인 평가를 하게 되면 애초에 가졌던 인상을 버리고 사람들의 평가를 따른다. 이런 과정을 통해 어떤 경우에는 한 사람을 향한 미움이 그 대상을 미워할 이유가 없는 다른 사람들에게로 전염된다. 심지어 그 대상과 안면도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미움이 전염된다.

조직력이 강할수록 집단적으로 한 사람에 대한 미움을 순식간에 전염시킬 수 있고 그 영향력은 대단하다. 소위 집단 감염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 한 사람을 희생양 삼아 자신들의 조직을 유지하려고 하는 저의가 강하면 강할수록 미움의 심도는 깊어지고 전염 속도는 빨라지는 법이다. 특히 종교단체에서 그런 수법들을 많이 쓰는 것을 보게 된다. 심각한 지도자의 과오를 한 회원에게 뒤집어씌워 집단 따돌림을 함으로써 조직을 견고히 해나가는 것이다.

공자 선생은 ‘논어’ 위령공편에서 말하기를 ‘중호지필찰 중오지필찰(衆好之必察 衆惡之必察)’이라고 했다. 뭇사람이 좋아하더라도 반드시 살펴봐야 하고 뭇사람이 미워하더라도 반드시 살펴봐야 한다는 뜻이다.

아무리 다른 사람이나 매스컴들이 명작이라고 떠들고 베스트셀러라고 떠들어도 자신이 반드시 살펴본 후에 판단을 내려야 하듯 아무리 다른 사람이 누구를 크게 칭찬하더라도 자신이 반드시 살펴본 후에 판단을 내리는 게 좋다. 제품 구입에서도 이런 원칙을 적용하면 남들이 좋다고 해서 무조건 사들이는 쓸데없는 낭비를 줄일 것이다.

아무리 다른 사람이 누구에 대한 악소문을 내고 다니더라도 자신이 반드시 살펴본 후에 판단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진위를 판단하기 힘들 때는 함부로 말하고 다니지 말아야 한다.

최근 SBS ‘힐링 캠프’에 출연한 고씨 성을 가진 두 여배우가 터무니없는 악소문에 시달린 일화를 털어놓았다. 제주도 출신인 중견 여배우는 너털웃음으로 웃어넘겼지만 또 한 배우는 그때 상처가 되살아나는지 눈물을 글썽거렸다. 화려하게 보이는 인기 여배우들에 대한 시기심 등이 보태져서 악소문들은 날개를 타고 금방 퍼져 나간다. 그 소문이 사실이 아니라면 상대방이 받게 될 상처가 얼마나 클 것인지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악소문은 번져 나가고 미움을 전염시키는 바이러스로 활동하게 된다. ‘중호지필찰, 중오지필찰’의 자세를 가질 때 근거도 없는 미움을 퍼뜨리거나 그런 미움에 전염되는 일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성기 소설가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