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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칼럼]김두관, 그 스토리와 콘텐츠

입력 | 2012-07-30 03:00:00


황호택 논설실장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는 37세에 남해군수에 당선돼 부산·경남(PK)에서는 꽤 이름이 알려졌지만 서울의 정치무대에서는 생소했다. 노무현 정부가 초대 내각에 그를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발탁하면서 전국적인 인물이 됐다. 행자부 장관실에서 김두관과 도시락 점심을 먹으며 두 시간 동안 월간 ‘신동아’에 실을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신동아 외판원 출신이 장관이 돼 신동아 인터뷰에 나갔더라면 화제를 모았을 텐데 한창 검증이 뜨거운 때여서 게재 시기를 저울질하다 기회를 놓쳤다. 나중에 필자가 신동아 인터뷰를 묶어 책으로 펴낼 때 김두관 인터뷰를 집어넣어 미안함을 덜 수 있었다.

그는 1980년대 중반 야간에는 민주통일민중연합(민통련) 부설 민족학교를 다니고 낮에는 신동아 외판원을 했다. 이런 저런 기사를 소개하며 정기구독을 권유하다 예비독자와 시국토론으로 이어지는 일도 있었다. 신동아는 그에게 생활비의 원천이자 시사 지식의 제공자였던 셈이다. 부지런히 발품을 팔고 돌아다닌 덕에 서울에 혈연 학연이 없는 시골 출신이 외판원 80명 중에서 판매 실적으로 30등을 했다.

김두관은 한나라당이 낸 해임건의안이 국회를 통과해 7개월 만에 장관을 그만두었다. 노무현 길들이기용 해임건의안은 여소야대 국회에서 간신히 반수를 넘겼다. 그가 아마 주류사회와 학맥의 네트워크가 연결됐더라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25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도 “빈약한 학력으로 글로벌 시대의 정상들과 토론을 벌일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민평련과 관훈토론 엇갈린 반응

김두관은 종합고(농고의 후신)를 나와 전문대를 거쳐 동아대 정치학과에 학사편입해 졸업했다. 그는 국민대에 합격해놓고 입학등록금을 구하지 못한 이야기를 소개하며 “꾸준히 노력하고 공부해 당당하게 정상외교를 하겠다”고 답변했다. 그의 학벌 빈곤은 대다수 국민에겐 오히려 연민과 동일시(同一視)의 스토리가 될 수도 있다.

김두관은 고 김근태계의 모임인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와 6월 25일 초청 간담회를 가진 뒤 “스토리는 풍부한데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말이 나온 것을 뼈아프게 생각하고 있다. 이 간담회에서 김두관은 몇 개 질문에 답변을 제대로 못했다. 김두관 캠프의 윤승용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청문회를 당한 경험이 처음이었고 미처 준비할 새가 없었다”면서 “관훈토론에서 민평련 토론회의 실패를 만회했다”고 자평했다.

관훈토론에서 그가 ‘힐링 캠프’의 PD를 호칭하며 “나에게도 기회를 달라”고 애소하듯 말한 것은 어색한 장면이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대선이 4개월 남짓 남았는데도 언론 인터뷰를 회피하고, 시청률 높은 지상파TV 예능프로에 나가 연예인들과 인생 담소를 나누는 이미지 정치를 한다.

‘백마 탄 기사’ 같은 기품으로 안개를 피우며 지지율 1, 2위를 오르내리는 안 원장을 ‘논두렁 이장’ 출신 김두관이 흉내 낼 일이 아니다. 본격 언론과 부대끼며 스토리를 확산하고 콘텐츠를 보여줄 때다. 김두관은 대선 출전을 앞두고 전문가들을 불러 국가 현안에 대한 과외공부를 했다고 한다. 저서 ‘아래에서부터’는 “전통적 지지그룹에 중도세력을 설득해 끌어들이는 덧셈의 행위”라고 정치를 규정했다. 그렇게 잘 알면서도 종합편성TV에는 나가지 않는다. 인지도와 지지율 끌어올리기가 다급한 후보가 좌와 우를 가리거나 지상파냐 종편이냐를 따지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그는 민주통합당에 입당할 때 “국민이 원하는 것은 ‘노무현 한 번 더’가 아니라 ‘노무현을 넘어서는, 더 큰 정치’가 필요하다”는 뜻의 말을 했다. 그는 저서 서문에서 성공한 서민정부가 되려면 지지 세력을 배신하지 않으면서 ‘불필요한 적’도 만들지 않아야 한다”고 밝혔다. 김 전 지사는 노무현의 중요한 실패 원인인 편 가르기 언론관을 답습해서는 안 될 것이다.

24일 리얼미터의 다자 대결구도 조사에서 문재인 의원은 10.0%로 떨어졌고 손학규 김두관 후보는 나란히 4.5%를 기록했다. 아직은 일강(一强) 양중(兩中) 구도지만 총선 이후 문 의원이 정체된 분위기다. 총선 때 PK에서 크게 기여를 못했고 참여정부의 연장선에 있는 그에 대해 호남의 지지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분석이다. 더욱이 결선투표제가 마련돼 막판 뒤집기도 가능해진 상황이다.

문재인 꺾으면 진짜 돌풍 될 수도

선거여론조사 전문가인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문재인이 민주당의 최종 후보가 된다면 안철수가 재경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만약에 김두관 손학규 중에 하나가 돌풍을 일으켜 문재인을 꺾고 민주당 최종후보가 되는 상황이 온다면 안철수가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가정에 가정을 거듭한 분석이지만 민주당에서 문재인 대세론이 뿌리 내리지 못하는 사이에 장외의 ‘백마 탄 기사’가 흔들리는 상황이 올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황호택 논설실장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