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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희의 ‘광고 TALK’]비싼 와인만 마신다?

입력 | 2012-07-30 03:00:00


김병희 교수 제공

신(神)의 물방울이라는 와인. 우리나라에서도 프랑스 못지않게 소비량이 급증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이마트 지수’를 봐도 와인 소비가 늘었다. 이마트 지수란 이마트에서 판매하는 476개 상품군의 분기별 소비량의 변화를 평가한 수치로, 100 이상이면 전년 같은 기간보다 소비가 늘었고 100 이하면 줄었음을 뜻한다. 경기침체로 생필품이 포함된 식생활 지수가 사상 최저치인 92였는데, 와인은 112로 나타났다. 오늘날 이렇게 인기가 높은 와인이지만 일제강점기에도 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카다마(赤玉) 포트와인의 광고(동아일보 1925년 4월 8일)를 보자. 포트와인이란 포르투갈에서 만든 레드 와인이다. 아카다마는 빨간 구슬이라는 뜻. 아예 ‘적옥(赤玉) 포트와인’을 헤드라인으로 썼다. “생명의 술이라고, 찬가(讚歌)를 밧는(받는) 방순(芳醇·향기롭고 맛이 좋음) 무비(無比·비교할 수 없음)한, 아카다마(赤玉)! 비(比)하면 존귀한 홍옥(紅玉)이오, 순연(純然·순수)한 처녀의 피”라며, 보디카피에서 온갖 미사여구를 다 동원했다. ‘순수한 처녀의 피’라는 설명은 몸에 좋은 약처럼 포장한 결정판이다.

라인 드로잉(line drawing)의 세련미가 톡톡 튄다. 여인은 와인 잔을 받쳐 들고 배달하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데, 서글서글한 눈매가 독자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는 것 같다. 카피와 비주얼이 어떻게 만나야 상업예술이라는 이름의 웨딩홀에서 행복한 결혼을 할 수 있는지, 그 달콤한 법칙을 이 광고는 알려주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포도주는 맛이 달아야 한다’는 집단적 기억을 지닌 데는 아카다마의 영향이 컸다는 기록도 있다.

이런저런 모임에 나가보면 소믈리에는 비싼 와인을 주로 권한다. 와인 가게에서도 마찬가지. 값에 걸맞은 와인의 맛과 향을 구별할 분이 과연 몇이나 될까. 외국 여행을 할 때마다 와이너리에 가보면 한 병에 우리 돈 1만 원이면 충분한 향기로운 와인도 많다. 맛과 향을 구별하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비싼 것만 고집해서야. 지금 대형마트에서는 반값 와인을 내놓았고, 정부에서도 인터넷 판매의 허용을 저울질하고 있다. 이런 때 비싼 와인을 마셔야 분위기가 산다며 허세를 부리기보다는 자기 취향의 맛과 향을 발견하는 일이 먼저가 아닐까.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