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여성 부자는 호주의 ‘철(鐵)의 여인’
《 세계 최고의 여성 부자는 누구일까. 호주의 광산재벌 지나 라인하트 회장(58)이다. 그녀는 지난 7년 동안 1위였던 미국 월마트의 상속녀 크리스티 월턴을 제치고 올해 처음 세계 최고의 여성 부자에 등극했다. 곧 남녀를 통틀어 세계 최고 부자가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주요 외신들은 그를 집중 조명하는 기사를 쏟아 내고 있다. 》
○ “난 상속녀 아닌 자수성가한 경영인”
세계 최고 여성 부자인 지나 라인하트 회장. 비록 아버지 회사를 물려받았지만 상속 당시 적자 회사 를 흑자로 바꾸고 글로벌 기업으로 키웠다. 사진 출처 호주 AAP통신
라인하트는 1992년 아버지 랭 핸콕이 세운 ‘핸콕광산그룹’을 물려받아 38세의 나이에 회사 지분 100%를 보유한 그룹 회장에 올랐다. 핸콕그룹은 1950년대 초 발견된 호주 서부의 대규모 철광석 광산을 보유한 광산업체였지만 그녀가 상속받았을 당시엔 적자에 허덕이고 있었다.
블룸버그통신은 “라인하트의 부상은 금융위기 이후 경제 중심이 서구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옮겨가고 있는 걸 보여주는 사례다. 중국의 경제붐이 광산업체 성장을 이끌고 있다”고 분석했다. 씨티그룹은 “원자재 수요 증가로 핸콕그룹이 개발 중인 철광 탄광 등에서 앞으로 100억 달러 이상의 연간 수익을 낼 것으로 보인다. 라인하트는 카를로스 슬림 회장, 빌 게이츠를 제치고 남녀 통틀어 세계 최고 부자로 등극할 가능성이 높다”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 “나의 영웅은 철의 여인 대처”
살찐 중년 여성의 평범한 외모를 가진 라인하트 회장은 진주목걸이를 즐겨 한다. 그를 그린 만평이나 캐리커처에도 항상 진주목걸이가 그려져 있다. 이와 관련해 BBC방송은 “라인하트가 23세 때인 1977년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를 만난 뒤 그를 영웅으로 삼았다”며 “진주목걸이를 즐겨 한 대처의 패션을 따라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패션뿐 아니라 사상이나 사고체계도 대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시장 개입 최소화를 주장하며 ‘대처리즘의 교과서’로 불린 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라인하트가 존경하는 또 다른 인물이다.
정치적인 면에서도 자신의 견해를 관철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전투적 행동가’로 통한다. 2010년 호주 노동당 정부가 광산업계에 탄소세와 수익세를 부과하려고 하자 직접 항의시위에 참가해 반대 구호를 선창했다. 당시 현지 언론은 “라인하트가 주먹을 치켜들 때마다 손목에 달린 금팔찌가 번쩍였다”며 ‘억만장자의 시위’라고 꼬집기도 했다.
광산업에만 몰두하던 라인하트는 최근 미디어산업에까지 손을 뻗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2월 페어팩스미디어그룹의 지분을 대거 사들이며 일약 최대 주주로 올라선 것. 패어팩스는 호주 유력지 시드니모닝헤럴드, 디에이지를 비롯해 300개 신문, 15개 라디오방송국을 보유한 호주 양대 미디어그룹 중 하나다.
지난달 대대적인 구조조정 계획을 내놓은 라인하트는 이사회 의석 수, 편집권 독립 등을 둘러싸고 패어팩스와 갈등을 빚고 있다. 시드니모닝헤럴드는 “라인하트가 국가 정책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언론을 손에 넣고 있다. 시드니모닝헤럴드가 ‘시드니 마이닝(mining·광산업) 헤럴드’가 될지 모른다”고 비판했다. BBC방송도 “미디어산업에서 수익을 내려는 게 아니라 정치적 영향력을 높이려는 것”이라며 “부자들이 재산 10% 정도를 고급요트나 개인전용기 구입에 쓰는 것처럼 라인하트는 그 정도 돈을 언론에 쓰고 있다”고 꼬집었다.
돈 많은 재벌가에서 유산 상속 분쟁이 곧잘 빚어지는데 라인하트 회장도 마찬가지다. 아버지 재산을 놓고 필리핀계 계모와 14년간 법정다툼을 벌인 데 이어 지금은 자녀들과 분쟁을 벌이고 있다. 라인하트는 이혼한 첫 남편 그레그 헤이워드와 사망한 두 번째 남편 프랭크 라인하트 사이에 총 1남 3녀를 뒀다.
맏아들 존(36)은 “어머니는 자녀들을 기만하며 통제하려 한다. 수치스럽다”고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이에 대해 라인하트는 “내 자식들은 스스로 직업을 찾거나 오랫동안 일해본 적도 없이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다. 그들에겐 재산을 관리할 능력도, 경험도, 판단력도, 책임감도 없다. 생활방식과 태도를 바꾸는 게 먼저”라고 경고했다. 포브스는 이런 그녀를 두고 “재산을 물려주기 싫어하는 욕심 많은 피상속인이기보다는 엄격한 교육관을 가진 ‘슈퍼 리치’”라고 평했다.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