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전 인제대 상계백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모호하고 객관적 증거가 잘 보이지 않는 잠과 꿈에 대해 지금까지 알려진 것은 20, 21세기의 눈부신 과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흡한 편이다. 그것은 복잡한 뇌 때문이다. 뇌의 신경원세포인 1000억 개의 뉴런은 각각 수천 개의 뉴런과 무작위로 신호를 주고받는다. 이런 접속 공간, 즉 시냅스가 100조 이상이다. 뉴런의 상호 연관관계를 따지기엔 그 복잡성과 데이터 규모가 천문학적이다. 뇌파검사 역시 극히 일부의 신호만 잡아낼 뿐이다.
SF 영화에 등장하는 인공 지능 컴퓨터를 생각하면 된다. 컴퓨터의 크기가 거대한 빌딩만 하다. 하지만 방대한 대뇌의 정보처리 시스템은 그런 컴퓨터로도 따라잡을 수 없는 엄청난 분량의 데이터다. 감히 인간의 대뇌를 모방하는 컴퓨터 실험 모델을 만들기가 힘들다.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성향에 따라서도 꿈의 내용이 달라진다. 서구의 여러 연구 결과에서는 우파이거나 극우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꿈에 악몽이 많은 것으로 보고된다. 이는 자신이 느끼는 현실세계의 위험이나 위협이 반영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 우파 성향의 사람들은 잠들기 전과 잠든 상태의 경계가 명확하다.
이에 비해 좌파적 성향의 사람은 경계가 불분명하고 연속된 스펙트럼 같은 비몽사몽의 양상을 보인다. 이렇게 우파적 성향, 좌파적 성향을 가진 사람의 꿈이 다른 것은 뇌의 인식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평소 우파적 성향은 우리 편과 남의 편의 경계가 분명하다. 피해의식도 상대적으로 강하다. 반면 좌파적인 사람은 우리와 남의 경계가 모호한 성향이 있다. 한편 폭력적인 내용의 꿈에서는 남자든 여자든 가해자로서보다 피해자로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그것은 우리가 평소에 사고할 때 일이 잘못될 경우를 대비하는 데 더 신경을 쓰기 때문이다. 꿈에서 느끼는 감정이 행복보다 걱정과 분노, 슬픔이 더 많은 것도 같은 이유다. 따라서 꿈에서도 나쁜 경우가 더 많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악몽을 꿨다고 신경 쓸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제 꿈의 해석 자체는 큰 의미를 상실했다. 평소 마음가짐의 편린이 꿈에 나타나는 것이고 꿈은 원래 부정적인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본다면 모든 현상이 다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불경의 보왕삼매론에 나오는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기를 바라지 마라.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생기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 하셨느니라’를 생각한다면 한여름 밤에 뒤숭숭한 꿈을 꾸었더라도 크게 괘념할 일은 아니다. 과학적으로는 더이상 꿈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최수전 인제대 상계백병원 호흡기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