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바의 神’ 만들어주신 ‘소바 명인’
일본에서 ‘소바의 신’으로 불리는 소바 명인 다카하시 구니히로 씨가 방한해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 호텔에서 정통 소바를 빚고 있다. 최혁중기자 sajinman@donga.com
그랬던 그가 언제부턴가 나타나지 않았다. 궁금해하던 어느 날 그의 가족에게서 전화 한 통이 왔다. 그 손님이 병석에 계신데 “죽기 전에 다카하시 군의 소바가 먹고 싶다”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요리도구를 챙겨 그의 집에 갔다. 누워 있는 손님에게 직접 빚은 소바를 드렸다. 그때 그가 소바를 맛있게 먹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소바를 빚은 지 40년째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가 해 주시는 소바를 좋아했다. 어머니가 소바 만드시는 모습이 하도 재미있게 보여서, 부엌 기둥에 기대어선 넋을 잃고 바라보곤 했다. 고교 시절부터 소바 가게를 차리면 어떨까 생각했지만, 안정된 직장에 다니면 좋겠다는 어머님의 권유에 냉난방 설비업체에 취직했다.
인생은 알 수 없다. 스승과의 인연은 거기서 끝인가 생각했는데, 묘하게 이어졌다. 스승이 강의하는 소바교실에서 수강생들에게 시범을 보이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원래 이 일은 본점 제자들이 맡았는데 본점에 손님이 많아지면서 시간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지점장이 이 얘기를 듣고 나를 추천했다. 날마다 오전 4시에 일어나 도구를 점검하고 청소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내 모습을 유심히 봤다고 지점장은 말했다. 꿈에서도 소바를 빚을 정도로 열정적이었던 내게는 정말 귀한 기회였다. 지점의 주방에서 소바 수행을 하랴, 스승의 강의를 도우랴,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지만 날마다 더 많이 배운다는 기쁨에 힘든 줄도 몰랐다.
스승의 강의를 따라 시범을 보이면서 사람들 앞에서 소바를 빚는다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것,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경험은 나의 지식과 실력이 일취월장하는 계기가 됐다. 본점이 아니라 지점에서 일하게 돼서 처음엔 아쉬웠지만, 지나고 보니 외려 잘된 일이었다. 본점에선 1년 정도 지나야 반죽 수행을 할 수 있는데,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고 지점장이 3개월 만에 내게 반죽을 배우도록 했다. 본점에서보다 훨씬 빨리 배울 수 있었던 것이다. 지점장이 저혈압 때문에 아침잠이 많은지라 아침 일찍 일어나 재료 준비를 하는 것도 내 몫이었다. 그 덕분에 음식 승부는 재료에서 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제는 가게 운영을 접고 제자 양성에 힘쓰고 있지만, 도쿄에 처음으로 소바 가게를 내게 됐을 때의 기억은 늘 생생하다. 가게 장소를 물색하는데 가타쿠라 씨가 동행했다. 몇 군데를 알아보다가 한 건물의 지하 1층으로 정했다. 스승은 “물론 가게 위치가 중요하지만 정성을 다해 빚어서 맛있다고 생각하는 소바를 낸다면 반드시 손님은 오게 돼 있다”고 내게 말했다. 스승의 말이 맞았다. 사람들은 나를 ‘소바의 신(神)’으로 부르지만, 내 소바를 맛있게 먹는 손님들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왜 소바를 고집하는가”라는 사람들의 질문에, “멀리서도 나를 찾아와 주는 손님 때문에, 소바가 그렇게 사람 간의 정을 이어 주기 때문에”라고 답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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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