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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보내달라” 상하이영사관 30代의 절규

입력 | 2012-08-02 03:00:00

中 만주서 조선족으로 출생→가족따라 北으로→탈북




현재 주상하이(上海) 한국총영사관 탈북자 보호시설에서 한국행을 학수고대하며 1년 넘게 머물고 있는 A 씨. 중국 공안은 그가 탈북자가 아닌 중국 국적의 조선족이라고 주장하면서 출국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 반면 A 씨는 “내가 태어난 곳이 중국일 뿐 어릴 적 부모와 함께 북한에 들어가 북한 국적으로 오랫동안 살다 생명을 걸고 국경선을 넘은 탈북자”라며 한국행을 눈물로 호소하고 있다.

베이징(北京) 선양(瀋陽) 상하이 등 중국 내 한국 공관에 장기 체류했던 탈북자들은 5월 초 한국에 모두 들어왔다. 하지만 이들처럼 오랫동안 한국 공관에서 생활해 온 A 씨의 한국행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A 씨는 1970년대 후반 중국 동북지방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부모 또는 조부모 대(代)에 한반도에서 만주 지역으로 이주한 것. 여기까지만 보면 그는 중국 국적의 조선족이다.

하지만 그는 어떤 이유인지 북한으로 이주해 북한 국적도 얻었다. 그의 가족이 어린 그를 데리고 북으로 간 것이다. 사실 1990년대 북-중 사이가 나빠지고 북한 경제가 몰락하기 전까지 북-중 간 왕래는 비자 수속과 같은 정식 절차가 무의미했다. 당시 국경지역 주민의 여러 증언을 통해 알 수 있듯 당시엔 이웃 동네를 오가듯 북-중 국경을 넘나들었다. 이 때문에 A 씨뿐 아니라 랴오닝(遼寧) 지린(吉林) 헤이룽장(黑龍江) 성 등 동북3성에 살던 많은 조선족이 당시 중국보다 형편이 나았던 북한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중국이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점점 발전하면서 상황이 역전됐다. 북한이 갈수록 못살게 된 것. A 씨의 가족 중 일부는 다시 중국으로 돌아와 중국 국적을 회복했다. 1990년대 북한의 ‘고난의 행군’ 시기로 추정된다. A 씨는 그대로 북한에 남았고 결국 나중에 탈출해 한국 공관에 진입했다.

현재 중국 당국은 그의 옛 후커우(戶口·호적)를 증거로 그가 중국인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A 씨는 총영사관을 나가면 북한 측의 요구로 강제 북송될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중국 국적자인 그의 형이 돕고 있지만 그의 국적을 증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 소식통은 “A 씨의 사연에서 살기 위해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던 우리 민족의 가슴 아픈 현대사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중 양국은 그의 신병 처리를 놓고 협상을 계속해 왔지만 큰 진전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상하이 한국총영사관 측은 “탈북자에 대해서는 어떤 것도 말해 줄 수 없다”며 A 씨에 대한 일체의 취재를 거부했다.

베이징=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