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인사이드 코리아/브래드 벅월터]이류 취급 당하는 한국의 문화유산

입력 | 2012-08-03 03:00:00


브래드 벅월터 ADT캡스 대표

나는 1983년에 봉사활동차 한국에 왔다. 내가 처음 살았던 곳은 경상남도 통영, 옥빛 푸른 바다가 아름다운 항구도시다. 당시 그곳에서 내가 가장 즐겨 찾던 곳은 미륵산 용화사였는데, 거기서 바라본 다도해의 모습은 그야말로 ‘원더풀! 또 원더풀!’이었다.

커다란 섬을 따라 점점이 늘어진 작은 섬들, 그 사이사이로 비치는 푸른 에메랄드빛으로 펼쳐진 다도해의 모습은 아직도 아름다운 한 장의 사진처럼 기억 속에 남아있다.

이후 발리, 하노이, 할롱베이 등 아시아 지역에서 아름답다는 곳을 여러 군데 가보았지만 1983년 통영에서 본 그때의 풍경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한국처럼 푸른 숲이 우거지고 시원한 계곡물이 항상 흐르며 아기자기한 자연의 아름다움이 조화된 풍경을 찾을 수 있는 곳은 또 없다. 최근에 들으니 당시 내가 즐겨 찾던 용화사와 미륵산 코스는 한국인에게도 인기 있는 관광 코스가 되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도 아주 반가운 소식이었다.

휴가를 내거나 업무를 보는 틈틈이 나는 방방곡곡 숨어 있는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 깊은 문화유산을 둘러보는 것을 좋아한다.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올랐던 지리산 능선길, 처음 본 대둔산 구름다리의 아찔함, 부처님오신날 용화사에서 연등이 온 길을 밝히는 신비스러운 분위기, 사시사철 조선왕조의 아름다움을 모두 간직한 듯한 창덕궁, 북한산 성곽 길에서 바라보는 한옥촌의 단아하고 고풍스러운 풍경 등등….

이러한 한국의 자연과 문화유산을 둘러보면서 내가 가장 놀라는 것은 한국 안에 숨겨진 보물들에 비해 정작 이 보물의 주인인 한국 사람들은 무심한 듯하다는 것이다.

유럽의 대리석으로 쌓아 올린 거대한 성이나 성당은 최고로 치면서 자연과의 조화를 최고의 가치로 고려한 한국인의 유적은 볼품없는 이류 취급을 하며 여행 선호지에서 밀리는 것 같다. 관광자원의 무한한 가치와 발전가능성을 깨달은 정부가 한류열풍과 관광산업 투자에 나서고 있지만 한국인 스스로의 자부심은 아직 많이 부족해 보인다.

한국은 산과 강, 그리고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자연의 축복을 받은 아름다운 나라다. 또 그 자연을 조화롭고 지혜롭게 지켜온 전통과 문화가 유적지에 고스란히 잘 담겨있다. 온갖 풍파를 겪고도 굳건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천년 고찰들이나 동양의 음양오행 사상을 따라 투박하지만 선비정신을 고스란히 담아낸 서원들은 어느 나라의 화려한 유적지보다 더 멋스럽다.

다른 유적지가 더 크고 화려한 목표들을 위해 경쟁하며 인간의 문명적 이기만을 내세울 때 한국의 문화재는 자연 속의 한 풍경이 되기 위한 선택을 하였다. 그리고 그 조화와 절제미를 갖춘 한국의 문화유산은 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철학을 담고 있다. 그 다름 속에서 나는 한국 문화재의 화려하지 않은 투박한 아름다움에 더 매력을 느낀다. 문화재 속에서 인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ADT캡스 대표로 부임하면서 회사 집무실의 창문을 바꾸었다. 밋밋한 유리창 대신 운조루 사랑채에서 보았던 것처럼 격자문에 한지를 바르고, 선물로 받은 난초로 나름 멋을 부려 보았다. 20여 년의 세월 동안 한국인이 다 됐는지, 이런 전통한옥의 분위기가 나에게는 자연스럽고 편하다. 외국에서 손님이 회사를 방문할 때마다 나는 전통한옥의 아름다움을 소개하곤 한다. 모두가 감탄하고 돌아갈 때 내 마음이 뿌듯해지는 것을 보니, 나의 한국사랑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브래드 벅월터 ADT캡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