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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희의 ‘광고 TALK’]콘돔 착용

입력 | 2012-08-03 03:00:00


김병희 교수 제공

최근 ‘비밀의 올림피언(The Secret Olympian)’이라는 책이 런던에서 출간돼 술자리의 안줏감이 되고 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당시 조직위원회에서 나눠준 무료 콘돔 7만 개가 1주일 만에 동났는데, 그때 참가 선수가 1만651명이었으니 한 명이 하루 1개씩 사용한 꼴이라며 선수촌의 성생활을 묘사한 책 내용이 단연 흥미롭기 때문. 선수촌에서 그럴 수가 있느냐며 흥분하는 분들도 있는데, 선수들도 똑같은 욕구를 지닌 사람 아닌가. 더 엄혹했던 일제강점기에도 사람들은 콘돔을 썼다.

정자당(丁子堂)의 삿구 광고(동아일보 1926년 2월 26일)를 보자. “남녀 방독(防毒) 고무”라는 설명에 이어 ‘삿구’가 헤드라인으로 쓰였다. ‘삭구’로 쓰이다 일제강점기에 삿구로 굳어진 이 말은 요즘의 콘돔이다. “본방(本邦·우리나라) 유일(唯一)의 정량품(精良品·정품)”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기능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상제(上製·최고급품)부터 여자용까지 10가지 종류별로 값을 깨알같이 설명했다. 마지막에 가서야 “비밀히 개인 명의로 밀송(密送·비밀 배송)함 타품(他品)과 비교걸(比較乞·비교 바람)”이라는 보디카피 두 줄을 덧붙였다.

콘돔을 독을 방지하는 고무라고 설명하고 있어 흥미롭다. 그 시절의 신문에 하루가 멀다 하고 매독과 임질 치료제 광고가 등장했으며 콘돔을 방독 고무로 설명했다는 사실에서, 당시에는 콘돔이 피임의 수단이 아닌 성병 예방 도구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마무리 카피에 나타나듯이, 누가 알까봐 비밀리에 개인 앞으로 배송했다는 점도 요즘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최초의 콘돔은 영국왕 찰스 2세의 방탕함을 걱정하던 주치의가 혈통의 남용을 막기 위해 어린 양의 맹장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양의 창자로 만들었던 콘돔은 리넨을 거쳐 라텍스 소재로 진화했다. 최근에는 미국의 로스앤젤레스 카운티에서 에이즈 예방운동 차원에서 콘돔 디자인을 공모했는데, 까만 나비넥타이 그림에 “품위 있게 착용하자”는 카피를 쓴 작품이 최고상을 받았다. 가장 좋은 피임법은 하지 않는 것. 하지만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건 안방에서 구경하는 사람이건 부득이 콘돔을 써야 한다면 좀 더 품위 있게 ‘착용’하라는 뜻으로 그 카피를 이해해보자.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