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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칼럼/김평화]스마트폰, 그 치명적 사랑

입력 | 2012-08-03 03:00:00


김평화 연세대 응용통계학과 4학년

나는 대학생이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학점관리, 영어공부, 봉사활동, 아르바이트…. 무슨 일이든 그녀와 함께한다. 그녀는 수업 시간에 필기를 돕고, 내 귀에 영어 단어를 속삭인다. 나의 일정 관리도 그녀 몫이다. 아는 것도 많아서 궁금한 걸 물어보면 대답도 척척. 심지어 길눈도 밝다. 그녀와 함께라면 어디를 가든 길 잃을 걱정이 없다. 곁에서 노래까지 불러준다. 그녀와의 달콤살벌한 연애를 시작한 지 2년. 시간이 흐르면 사랑도 식는다지만 이번 연애, 독하다.

남들은 이런 나를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본다. 그녀를 멀리하라는 조언도 들었다. 그녀가 나에게 도움을 주긴 하지만, 앞으로 잃는 것이 더 많을 거란다. 친구 말로는 내가 연애를 시작한 뒤로 변했단다. 하긴…. 화장실에서도, 어른들과의 식사 자리에서도 이젠 그녀 없이는 불안하다. 이게 말로만 듣던 사랑 중독인가? 미국 작가 수전 피보디는 그의 책 ‘사랑 중독’에서 ‘사랑 중독은 마음뿐 아니라 몸에도 나쁜 영향을 준다’고 했다. 어쩐지 요즘 몸이 좀 뻐근한 것 같다. 눈도 침침하고. 스마트하지만 위험한, 그녀의 이름은 ‘스마트폰’이다.

이런 ‘나’는 요즘 한둘이 아니다. 해외봉사를 같이 갔던 팀원들과 최근 모임을 가졌다. 올 초 네팔에서 2주간 함께 지내며 막역해진 사이였지만 오랜만에 만나서도 서로의 얼굴 대신 스마트폰만 들여다봤다. 화면을 들여다보며 혼자 키득거리는 친구도 있었다. 이어지는 대화도 스마트폰에 대한 얘기들이었다. 다들 스마트폰 중독자라 불리는 데 거부감이 없었다. “뭐가 그리 좋아?” 물어봤다. “끊임없이 대화할 수 있으니까.” “나만의 것? 내 일부라는 생각도 들어.”

스마트폰과 사랑에 빠진 청춘이 많다. 지난해 11월 한 구인구직업체에서 대학생 1896명을 대상으로 ‘스마트폰 이용현황’을 설문했는데, 응답자의 48.3%가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안하다고 답했다. 자신을 스마트폰 중독자라고 생각하는 비율도 37.3%나 됐다. 스마트폰 사랑에는 국경도 없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도 교내 스마트폰 사용자 200명에게 설문을 했더니 44%가 중독됐다고 답했단다.

스마트폰에 한번 빠지면 폐인 같은 잉여생활도 지루할 틈이 없다. 스마트폰 알람소리로 아침을 시작해 ‘카카오톡’으로 친구들과 대화하고, ‘페이스북’으로 서로의 근황을 챙긴다. 배가 고프면 배달 앱(애플리케이션)으로 음식을 주문한다. 영화도 내려받아 보고, 게임도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잘 때마저 스마트폰을 손에서 떼지 못한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할 때 위로를 얻기 위해 다른 대상에 집착하게 된다고 한다. 분리불안이나 소외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인 셈이다.

무한경쟁 사회를 살고 있는 대학생들은 각종 강박에 시달린다. 학점, 취업, 영어 뭐 하나 놓치지 않고 잘하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고 그 속에서 모두 외롭다. 실패가 쌓이면서 자신감도 잃는다. 이때 스마트폰에서 위로를 찾게 된다. 손 안의 스마트폰은 언제 어디서든 게임, 음악, 영화 등의 위안거리를 준다. 초라한 나를 드러내지 않아도 된다.

가볍게 시작한 스마트폰과의 관계는 의지하는 마음에서 점차 중독으로 변질된다. 마치 연애 같다. ‘꼭 네가 아니어도 괜찮다’는 마음이 기대와 집착으로 깊어지는 것처럼.

진짜 연애에서도 ‘사랑의 기술’이 필요하다. 밀고 당기기, 소위 ‘밀당 기술’을 적절히 사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에게 끌려다니기 쉽다. 스마트폰과의 관계에서 역시 적절한 균형과 조절이 필요하다는 걸 안다. 연인 사이에서도 각자의 시간과 공간을 인정하듯, 스마트폰과의 일정 거리도 필요하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스마트폰 전원을 꺼보려 하지만…. 스마트폰, 내게 너무 벅찬 그녀다.

김평화 연세대 응용통계학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