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히 알면서도 같은 실패를 매년 반복하는 게 여름휴가일 것이다. 기분 좋게 떠났다가 지겹도록 다투고 후유증에 시달린다.
남자의 올해 휴가도 그랬다. 호불호를 알 수 없는 아내의 애매한 반응에 섣불리 결정을 못하다가, 휴가 날짜 직전에야 간신히 예약을 한 곳이 대형 리조트였다. 남자는 힘들게 이뤄낸 자신의 성과를 아내가 알아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리조트가 그의 체면을 손상시키고 말았다. 전산 착오로 로비에서 네 시간 넘게 기다린 후에야 입실을 할 수 있었다. 칭찬을 기대했던 게 터무니없는 욕심이었을까. ‘그럴 줄 알았다’는 아내의 표정이 속내를 대변해주고 있었다.
그는 반항을 해보려다 체념한 채, 아이들을 데리고 미끄럼틀을 타기 위한 줄서기에 동참했다.
죄책감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평소에는 늦게 퇴근하니까 아이들의 잠든 모습밖에 본 적이 없고, 주말에는 누워서 TV를 보다가 잠을 자다가를 반복했으니까.
그러나 한편으로는 억울하기도 했다. 왜 전업주부들은 남편이 회사에서 밤늦도록 실컷 놀다 온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회사가 무슨 도전 1000곡 놀이방이라도 되는 줄 아는 것인가. 꽤 오래 전부터 아내의 태도에서 ‘잘 놀다 왔으니 이제부터 맛 좀 봐라’라는 느낌을 받곤 했다.
그런데 휴가에서나마 아이들과 놀아주는 게 결코 쉽지 않았다. 블록버스터 재난 영화 같은 인파 속에서 정신없는 와중에 딸이 갑자기 사라지는 통에 애를 태워야 했고, 아들은 차가운 물에서 오래 버티다가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그래도 어쩐지 불공평한 것 같았다. 아내는 아이들을 학교나 학원에 보내놓고 자기만의 시간을 쓸 수 있다. 아줌마들끼리 어울리며 수다도 떤다. 반면 남자는 그런 시간을 가져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야근 끝나면 집에 들어와 잠자기 바빴으니까.
그는 마침내 집으로 돌아오는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좌절하고 말았다. 그에게 휴가는 결코 휴가가 아니었다.
남자는 조수석에서 졸다 깨어난 아내에게 용기를 내어 말해 보았다.
“나, 내일 하루만 휴가 쓰면 안 될까? 혼자 등산 갔다가 저녁엔 친구들하고 막걸리….”
한상복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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