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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박용]어설픈 민영화의 저주

입력 | 2012-08-04 03:00:00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을 남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밀턴 프리드먼은 20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지성이다. 그는 경제 성장의 토대를 사기업으로 보고 기업가 정신을 옥죄고 시장을 왜곡하는 정부 규제를 철저히 반대했다. 1980년대 미국의 ‘레이거노믹스’, 영국 ‘대처리즘’과 같은 신자유주의 정책의 이론적 스승이었다. 그의 자유시장론은 “시장의 힘을 맹신하고 정부를 적으로 돌린다”는 비판도 받았다. 2006년 타계한 그에게 지난달 31일은 태어난 지 100년이 되는 날이다.

▷프리드먼은 1999년 ‘시장으로 가는 제3의 길은 없다’는 글을 통해 어설픈 민영화를 강하게 비판했다. 부분 민영화, 정부 개입의 축소, 민간 독점 전환과 같은 ‘제3의 길’은 정부 개입과 변화에 저항하는 핵심 세력을 남겨 시장 효율성을 살릴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예로 임직원과 노동조합의 반발로 민영화가 무산된 미국 우정공사를 꼽았다. 프리드먼은 정치 메커니즘의 비효율성은 기득권을 추구하는 ‘현상유지의 횡포(Tyranny of the status quo)’에서 시작된다고 꼬집었다.

▷프리드먼이 저주와 같은 악담을 퍼부었던 미국 우정공사가 1일 2011년분 퇴직자 건강보험 보조금 55억 달러를 내지 못해 부도를 냈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우정공사의 우편물 취급 규모는 5년 전보다 21% 줄었다. 우정공사의 인건비는 전체 비용의 80%를 차지한다. 민간 경쟁회사인 UPS의 53%, 페덱스의 32%보다 훨씬 높다. 2007년 이후 연속 적자다. 올해는 사상 최대인 141억 달러의 적자가 예상된다. 하지만 위기 탈출을 위한 사업 다각화나 구조조정은 법령이나 노조에 막혀 엄두를 내지 못한다.

▷한국에서도 정부기관인 우정사업본부와 공기업 체제인 전력산업과 인천공항의 민영화를 놓고 말만 무성했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우정사업본부 우편사업부는 지난해 10월 우편요금을 20원 올렸지만 6년 만에 적자를 냈다. 한국전력은 어제 전기요금을 평균 4.9% 올리기로 의결했다. 4월에 13.1% 인상안을 마련했지만 물가 부담을 우려한 정부 반대로 무산됐다. 올해도 2조 원대의 순손실을 감수해야 할 판이다. 프리드먼에게 해법을 묻는다면 “민영화를 하려면 제대로 해라. 제3의 길은 없다”는 말이 돌아올 것이다.

박용 논설위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