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의사 늘면서 병원내 성추행도 심각
“병원에서 일하는데 선배 의사가 ‘야, 이년아’라고 말하고 물건을 던졌습니다.”
“임신을 했을 때 축하는커녕 레지던트 2년차에 임신을 해야겠냐는 타박을 들었습니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지난해 전공의 631명을 대상으로 의료계의 폭언이나 폭행실태를 조사했더니 285명이 피해경험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본보가 이 자료를 검토해 보니 여자 전공의들은 성희롱이나 성추행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했다. 남자 전공의들이 대부분 폭언이나 폭행을 언급한 것과 대조적이었다.
여자 전공의들은 의도적인 신체 접촉에 불쾌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교수가 원치 않는 스킨십을 했다 △수치심을 느낄 만한 부위를 만졌다 △일부러 몸을 살짝 더듬는다는 식이었다.
성희롱은 회식자리에서 자주 일어났다. “술자리에서 야한 농담을 하며 특정한 신체부위를 거론했다. 당시는 막 전공의가 된 시기여서 당황했고 울었다. 선배 의사들이 이 일이 확대되는 걸 원치 않아서 그냥 사과를 받고 끝냈다. 그러나 이 일은 오랫동안 상처로 남아있다”(전공의 A 씨)
“술자리 이후 전문의가 다음 장소로 옮기자고 했습니다. 이제 그만 집에 가셔야 되겠다며 제가 택시에 태우려 했습니다. 그러자 ‘씨×. 전공의 주제에 가자고 하면 가는 거다’라며 욕을 했습니다.”(전공의 B 씨)
문제는 대부분 남자인 의대 교수나 선배 의사의 권한이 커서 여의사의 이야기를 들어주거나 잘못을 바로잡을 만한 분위기가 아니라는 점.
피해자들은 △네가 전문의 자격증을 따는 데에 방해를 하겠다 △전공의를 못하게 만들겠다 △내가 (널) 어떻게 해버리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설문조사에서 밝혔다.
전공의 C 씨는 “대부분의 경우 가해자는 무사하고 사실을 발설한 피해자만 더 다치게 된다. 윗사람이 아무리 부당한 일을 해도 의사 사회에서 윗사람을 이길 순 없다”고 말했다.
술자리에서 성추행을 당했다는 전공의 D 씨는 “피해를 당해도 어디다가 얘기할 곳이 없다. 다른 교수님들도 모르는 게 아닌 데다가 불이익이 무서워서 행동에 나설 수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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