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양궁협회장
이번 런던 올림픽에서도 여자는 단체전과 개인전을 석권하는 등 ‘양궁 세계 최강’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우승하는 순간도 극적이었지만 그 메달을 따기까지의 과정은 더욱 숨 가빴다. 한국 양궁의 숨은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 내분으로 자멸할 뻔했던 여자팀
맏언니 최현주의 극심한 부진이 발단이었다. 최현주의 자신감 상실은 팀 전체에 엄청난 악영향을 끼쳤다. “최현주 때문에 금메달을 날리게 생겼다”는 분위기가 싹트면서 여자대표팀엔 대화가 사라졌다. 특히 8년 만에 금메달에 도전하는 이성진은 최현주와 아예 말을 하지 않고 지냈다.
지난달 30일 열린 단체전 때 최현주는 “오늘 못 쏘면 여기서 죽어버리겠다”며 대회장에 들어섰다. 이 절실함은 극적인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중국과의 결승에서 8발 중 5발을 10점 과녁에 명중시키며 금메달을 이끈 것이다. 쓰러질 뻔한 한국 여자 양궁을 최현주가 살렸다. 그날 저녁 최현주와 이성진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그들의 대화가 다시 시작됐다.
○ 코칭스태프는 초죽음
이런 상황에서 감독 코치들의 맘이 편했을 리 없다. “최현주를 교체하라”는 압력에 버티면서 선수들을 다독여야 했으니 그 맘고생이야 이루 말할 수 없다.
장영술 양궁 총감독은 요즘 신경안정제를 먹지 않으면 잠을 못 잔다. 마음은 괴롭지만 선수들 앞에서는 여유 있는 듯 웃어야 하는 것도 고역이었다. 30일 단체전 금메달을 땄을 때 장 감독이 울음을 터뜨린 것도 이런 이유였다. 장 감독은 “꼭 누가 와서 금메달을 빼앗아 갈 것만 같았다. 금메달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한 잠도 못 잤다”고 털어놨다. 백웅기 여자감독 역시 극심한 스트레스로 오른 위쪽 어금니가 저절로 빠져 버렸다.
○ 7만 원짜리 도시락 먹고 힘낸 선수들
한국 양궁이 쾌거를 이룬 요인 중 하나는 대한양궁협회의 전폭적인 지원이다. 선수촌에서 양궁장인 로즈 크리켓 그라운드까지는 버스로 약 한 시간이 걸린다. 선수들이 지칠까 봐 협회는 양궁장 근처의 특급호텔을 잡아 선수들이 묵도록 했다.
입맛을 잃을까 봐 매끼 한국 식당에서 도시락을 시켰는데 개당 40파운드(약 7만 원)짜리였다. 선수들이 “중국음식이 먹고 싶다”고 하자 온 동네를 수소문해 곧바로 자장면을 대령한 일도 있었다. 또 응원에서 뒤질세라 대회 기간에 3514장의 티켓을 구입해 한인회와 유학생들에게 나눠줬다. 표값만 무려 3억 원가량 들었다.
정의선 양궁협회장
런던=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