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식 스포츠레저부장
아직 경기가 많이 남았지만 런던 올림픽 태극전사 10대 뉴스를 선정한다면 1위는 무엇일까. 올림픽 사상 첫 4강 신화를 이룬 축구가 우승의 위업까지 달성한다면 당연히 그 뉴스일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나는 ‘사상 첫 양궁 남녀 개인전 동반 우승’에 표를 던지겠다.
기록의 희소성 때문만은 아니다. 연인 사이인 두 주인공 오진혁과 기보배가 사랑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대표선수 이성교제의 훌륭한 ‘윈윈 사례’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만약 두 선수의 성적이 신통치 않았다면 적어도 양궁대표팀 내의 연애는 앞으로 절대 금기사항이 됐을 테니 말이다.
신궁(神弓) 커플은 런던에서도 ‘초능력’을 발휘했다. 기보배는 결승에서, 오진혁은 준결승에서 피 말리는 슛오프(동점일 때 화살 한 발로 승부를 가리는 것) 끝에 극적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큐피드가 결자해지(結者解之) 차원에서 도와준 것은 아닐까. 한국 양궁 지도자가 세계로 ‘수출’돼 실력이 평준화된 현실에서 동반 우승은 기적에 가까웠다. 여자 단체전은 7연패를 달성했지만 결승전에서 중국과의 점수차는 불과 1점이었고 4연패가 유력했던 남자 단체전은 동메달에 머물지 않았던가.
오진혁과 기보배는 두 사람의 열애 사실을 동아일보와 스포츠동아가 특종 보도한 4일 기자회견에서 ‘결혼 예정설’에 대해 ‘현재의 진도(進度)’만 밝혔다. 오진혁은 “좋은 관계로 만나고 있다. 올림픽 이후 본격적으로 결혼 얘기를 진행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기보배는 “올림픽을 준비하는 동안 너무 힘들었다. 진혁이 오빠가 위로의 말을 많이 해줬다. 앞으로도 계속 관계를 유지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양궁 관계자는 “연인 사이인 두 선수가 혹시 있을 수도 있는 결혼 불발에 대비해 최대한 상대를 배려한 답변을 했다”고 귀띔했다. 1980년대 이후 태어나 민주화된 환경에서 자란 ‘8090’ 신세대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영어 단어가 ‘쿨(cool)’이다. 사랑할 때도, 헤어질 때도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배려한다. 헤어진 애인도 자신의 인적 네트워크에 계속 포함돼 있고 과거의 애인에게 소개팅을 주선해 주는 것이 요즘 신세대다. 일단 헤어지면 원수가 되는 기성세대와는 다르다.
오진혁과 기보배는 교제 사실과 결혼 문제가 지금 거론되는 것이 다소 부담스러울지 모른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연인 사이라는 것을 스스로 밝혔던 두 선수는 금메달을 함께 따면서 한층 더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국내외의 열띤 관심을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수용할 자격이 충분히 있다. 국민적 스타들의 결혼은 자신들이 결정할 일이지만 인생 선배로서 선인(先人)들이 남긴 한 가지 지혜는 알려주고 싶다. 연애할 때는 눈을 크게 뜨고, 결혼하면 눈을 반쯤 감는 게 행복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안영식 스포츠레저부장 ysa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