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란(29·고양시청)이 웁니다. 펑펑 웁니다. 엉엉 소리 내어 우는 울음은 아닙니다. 아쉬움과 감사, 그간의 회한을 가슴에 꾹꾹 눌러서 웁니다.
울고 있는 장미란을 본 건 6일 영국 런던의 엑셀 역도 경기장 내 믹스트존에서였습니다. 인터뷰를 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방송 카메라에 등을 돌린 채 벽을 보고 눈물을 쏟습니다. 한참을 울다가 마음이 다소 진정됐는지 카메라를 향해 몸을 돌립니다.
그런데 이런. 활짝 웃습니다. 아니 웃으려 합니다. 얼굴은 눈물범벅인데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카메라에 대해 배려를 합니다.
방송 인터뷰가 끝나고 신문 기자들을 위한 인터뷰가 시작됩니다. 장미란은 갑자기 다시 벽을 향해 몸을 돌리더니 또 한참을 웁니다. “베이징 올림픽 때보다 한참 못 미치는 기록이 나와서 나를 응원하고 사랑해주시는 분들을 실망시켜 드렸을 것 같아 염려스러워요.”
이날 장미란은 인상 125kg, 용상 164kg으로 합계 289kg을 들었습니다. 세계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땄던 2008 베이징 올림픽(326kg) 때보다 턱없이 낮은 무게였습니다. 만약 용상 3차 시기에서 170kg을 들어 올렸다면 동메달은 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전 같으면 쉽게 들어올리던 170kg도 각종 부상에 시달리던 장미란에겐 어느덧 버거운 무게가 되어 있었습니다.
마지막 올림픽의 마지막 경기라는 생각이었을까요. 3차 시기에 실패한 뒤 장미란은 고개를 숙이더니 바벨을 향해 손 키스를 했습니다. 그리고선 두 손을 꼭 모으고 무릎을 꿇은 뒤 감사기도를 올렸습니다. 예전에는 좋은 성적을 거뒀을 때만 하던 기도였지요.
처음부터 힘든 싸움이 예상됐습니다. 장미란의 몸은 이미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왼쪽 어깨, 허리, 무릎, 팔꿈치…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었습니다. 부상 회복이 더뎌지자 부상을 안고 훈련을 했습니다. 아픈 몸으로 하루에 수천 kg의 쇳덩이를 들었다 놨습니다.
아쉽더라도 동메달이라도 땄더라면 그나마 괜찮은 마무리가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장미란의 말처럼 역도는 정직한 운동이었습니다. 연습 때 안 되던 무게가 실전에서 될 순 없었습니다. 그는 “오늘 연습 때 한 것만큼 딱 한 것 같아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선 자신을 응원해준 팬들과 국민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거듭 표현했습니다.
이제 장미란이 선수로 다시 최정상에 오르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자신은 기량을 유지하기 힘든데 경쟁자들은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불쑥 커 버렸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장미란이 국민에게 선사했던 기쁨과 감격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그는 2005년부터 4년 연속 세계선수권대회를 제패했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우승하며 5년 넘게 세계 여자 역도를 지배했습니다. 그는 아직 용상 세계 타이기록(187kg)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선수 생활을 계속하건, 아니면 제2의 인생을 살건 그의 앞길에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그동안 정말 고마웠습니다. 그대는 제 마음속의 영원한 챔피언입니다.
런던=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