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학대 수치감 한방에 날려버린 ‘불굴의 복서’
《 승부와 메달을 떠나 만나는 올림픽 참가 선수들의 삶은 그 자체로 하나하나가 감동적인 스토리입니다. 글로벌 핫 피플 5회의 주인공은 이번 런던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여자복싱(라이트급 60kg) 경기에 출전한 퀸 언더우드(29·미국)입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당했던 아픈 과거를 딛고 ‘복싱’을 통해 꿈을 이뤄 가고 있는 그녀는 “당연히 금메달이 목표이지만 올림픽 출전을 통해 누구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 주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녀의 ‘희망 찾기’를 들어 봅니다. 》
어릴 적 치명적이었던 정신적 육체적 상처를 딛고 일어선 퀸 언더우드. 5일 밤 10시 반(한국 시간) 영국 선수 나타샤 조나스 선수와의 16강전에서는 안타깝게도 패했다. 사진 출처 USA투데이
맏딸 하자나(31)는 “아버지가 내 몸을 더듬었던 첫날을 기억한다. 강간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움직이거나 소리를 지르면 동생이 깨므로 내가 저항하지 못할 것으로 알고 상습적으로 방에 들어와 학대를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둘째 딸 콰니타는 모든 것을 듣고 있었다. 새엄마가 야간근무를 시작한 뒤로는 아버지의 행동이 더욱 과감해졌다.
언니를 구하기 위해 세게 몸을 비틀며 잠에서 깨는 시늉을 하던 어느 날, 아빠는 언니를 데리고 다른 방으로 가 버렸다. 언니가 훌쩍거리며 돌아왔지만 아무 말도 없었다. “이야기하면 동생에게도 똑같은 짓을 하겠다”는 아버지의 협박이 무서웠던 것이다.
자매의 고백으로 아버지 아자드는 ‘미성년자 성폭행’ 혐의로 유죄선고를 받아 징역 7년, 보호관찰 5년형을 받았다. 아버지는 감옥에 있을 때에도 계속 미안하다고 편지를 보냈다. 언니 하자나는 “아버지가 불쌍하다”며 돈을 보내주기도 했지만 콰니타는 그러지 않았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아버지를 용서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버지가 없다.”
콰니타는 몸이 더럽혀졌다는 수치감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언니도 마찬가지였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티를 내지 않았지만 속마음은 우울증으로 썩어 가고 있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공부에는 뛰어나진 않았지만 발군의 운동실력 덕에 대학으로부터 장학금을 준다는 제의를 받기도 했지만 삶에 의욕이 없던 콰니타는 모두 거절했다. 고교를 졸업한 뒤 자살을 꿈꾸는 날과 술 및 대마초가 있는 파티를 즐기는 날이 반복됐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인생을 바꾼다. 다름 아닌 “복싱장에 가보라”는 것이었다. 콰니타는 복싱에 빠져 버렸다. 글러브를 낀 느낌 자체가 너무 좋았다. 묘지 경비원, 배관공 등 온갖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연습에 매달렸다.
그녀의 은인은 처음 찾아간 복싱장에서 만난 코치 캐피 코츠(56). 콰니타의 탄탄한 골격, 정제된 몸놀림, 스피드를 보고 한눈에 큰 재목이 되겠다고 알아본 코츠는 어둠 속에서 살던 콰니타를 밝은 세상으로 나오도록 조련했다.
콰티나는 2006년 처음 출전한 전미선수권 대회에서 지는 등 여러 차례 패배를 맛봤지만 이듬해 연속 다섯 번이나 전미 챔피언 벨트를 차지했다. 그리고 마침내 2010년 월드챔피언십에서 미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동메달을 땄다. 본명이 콰니타 언더우드이지만 지금 미국 여자복싱계에서 그녀는 ‘퀸(여왕) 언더우드’로 불린다. 그녀의 말이다.
“내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아픈 과거 때문’이 아니라 ‘아픈 과거에도 불구하고’다. 남들은 내 아픈 과거를 듣고 ‘그래서 링 위에서 괴력이 나오는구나’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링 위에 있을 때 과거에 대한 어떤 생각도 들지 않는다. 정신적으로 늘 화가 치밀고 고통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라면 과연 내가 경기에서 잘 싸울 수 있겠는가.”
외신들은 “씻을 수 없는 정신적 상처에서 스스로를 해방시켜 진정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통해 내면을 치유하고 있는 그녀야말로 ‘진정한 파이터’”라고 말한다.
(참조한 외신: 뉴욕타임스 유에스에이투데이 시애틀타임스 석세스매거진 오프라매거진)
▶ [채널A 영상] “아버지에게 성폭행 당했고, 나중엔 나도 남동생 성추행”
이수진 통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