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결혼은 ‘사회적 구속’이라던 사람이었다. “여자라서 행복해요”보다 “여자라서 투쟁해요”란 구호가 더 잘 어울렸다. 진보 성향 매체에서 일하는 선배 기자 얘기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청첩장을 돌리더니 임신, 출산까지 논스톱으로 진도를 밟았다. 그러곤 한동안 연락이 끊겼다. 얼마 전 밤늦게 전화가 왔는데 그 선배였다.
“임신했다며? 축하해∼.”
술자리에서 내 소식을 들었단다. 거나하게 한잔 걸친 목소리다.
“선배 아기는 몇 살이우?” “다섯 살.” “벌써? 다 키웠네∼.”
“내가 꼭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어. 애한테 3년은 정말 중요한 시기야. 그땐 엄마가 곁에 있어 줘야 돼. 3년만 잘 키우면 그 뒤로는 알아서 커. 그 3년을 놓치면 돌이킬 수가 없어.” 선배는 3년만 고생하라는 얘기를 하고 또 했다.
‘이 사람도 엄마가 됐구나.’ 기특하면서도 심란했다. ‘선배 말대로 애 옆에 엄마가 있어야 하는데….’
임신 전부터 현재까지 나와 남편을 짓누르고 있는 가장 어려운 문제인데 무방비로 기습 공격을 당한 듯 찔렸다. “그러게…. 애는 누가 키우지?” ‘엄마가 키우지, 웬 뚱딴지같은 소리냐’ 할 수 있지만, 당연한 게 당연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요즘은 아이를 품에 끼고 키울 수 없는 엄마가 많다. 생계형과 자아성취형,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생계 때문에 일을 포기할 수 없고, 사회적 성취 때문에 일을 포기할 수 없다. 많은 경우 두 이유가 복잡하게 얽히기도 한다. 그런데 사회는 극단적으로 묻는다. ‘아이냐? 일이냐?’
친구 하나가 한 달 전 결혼을 했다. 미루고 미루더니 결혼하니 좋다고 헤벌쭉한다. 그런데 고민도 생겼단다. ‘언제 임신을 하느냐?’
마흔 줄에 들어서는 남편 나이를 생각하면 당장 임신을 해도 늦다. 친분 있는 산부인과 의사도 볼 때마다 성화란다. 그때마다 “지금 큰 프로젝트를 맡고 있어서”라고 둘러대지만 돌아오는 건 “아니, 지금 임신보다 더한 프로젝트가 어딨느냐”는 타박이다.
그는 공연기획자로 잔뼈가 굵은 친구다. 문화예술계가 그렇듯 회사 규모가 크지 않다. 20명 남짓 근무하는 사무실에서 육아휴직이라는 법적 권리를 찾기는 힘들다. “3개월 출산휴가까지는 쓸 수 있는데, 휴가가 끝나면 그 핏덩이를 누가 키울까 싶어. 1년 육아휴직을 쓴다고 하면 아예 회사를 나가야 할 분위기야.”
아이에게 만 2세까지가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지 모르는 부모가 있을까. 일생에서 뇌가 가장 활발히 발달하는 시기다. 특히 부모와의 애착이 중요한데, 이때 ‘감정의 뇌’가 발달하기 때문이다. 주 양육자가 아이와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아이의 성격이 달라진다. 최선의 주 양육자는 물론 엄마 아빠다.
은행에 다니는 지인은 돌 지난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한동안 힘들어했다. ‘○○이가 아침밥을 잘 먹었습니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보내 준 일정표 첫 줄에서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갓난아기가 오전 7시 반부터 일정표에 따라 생활한다는 게 안쓰러웠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출근을 시작한 지 4개월째. 그녀는 “아이가 먹고 자는 건 안심이 되는데, 엄마 품이 필요한 시기에 떼어 둔다는 게 항상 걱정”이라고 했다. 그래도 여성 인력이 많은 금융계에 적을 둔 덕에 1년간 육아휴직도 쓰고, 직장 어린이집 혜택도 누리고 있으니, 그녀와 아이는 그나마 국내 모성보호 정책의 최대 수혜자인 셈이다.
강혜승 기자
사회는 저출산을 걱정한다. 동시에 낮은 여성 인력 활용도를 우려한다. 모두 국가경쟁력과 직결된 고민이다. 그러면서도 일과 가정을 양립시킬 수 있는 대책은 내놓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만 2세까지의 가정 내 육아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법으로 보장된 1년간의 육아휴직도 정착시키지 못한다. ‘애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상식이 우리 사회에서는 왜 유독 난센스일까.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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