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은 말한다
배인준 주필
땀은 역시 아름답다
영국은 홍명보 팀을 얕잡아봤다. 브라질과 격돌하기 전에 몸 푸는 상대쯤으로 한국을 대했다. 그 지점에 우리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생겼다. 아마추어인 나 같은 사람도 경쟁자들을 슬쩍 깔보는 순간 실수를 하고 점수를 잃는 경험을 한다. 교만은 집중의 적(敵)이다.
그제 런던 올림픽스타디움을 누빈 우사인 볼트는 여유만만한 ‘번개’였다. 타고난 신체조건과 체력을 신이 선사했기 때문이라고 시샘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얼마나 혹독한 훈련을 하는지, 그래서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을 얼마나 자주 하는지, 그를 8년간 조련시켜 온 글렌 밀스 코치가 순둥이 같은 표정과는 딴판으로 얼마나 무섭고 집요한지 알게 되면 질투를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3년 전 볼트는 100m 9초40 기록을 목표로 밝히면서 “내 땀방울이 해낼 것”이라고 했다.
우리의 작은 영웅 양학선은 태어날 때 체중이 2.3kg이었다. 그가 한국체조 첫 올림픽 금메달을 거머쥔 것은 ‘탁월함을 향한 구도(求道)’의 결과다. 뜀틀에서 1080도 공중회전 기술인 ‘양학선(양1)’을 창조하고 완성하기까지 하루 수백 번, 10년 수만 번 뜀틀을 넘었다. 그는 노력가 이상의 혁신가다.
양학선도 볼트도 ‘노력하는 사람이 곧 능력 있는 사람’임을 웅변한다. 훈련과 공부와 일의 고통을 이겨내는 지구력은 승리와 성공을 위한 능력의 ABC라 할 것이다. 땀은 역시 아름답다.
그토록 땀 흘렸음에도 신아람, 조준호, 그리고 박태환은 오심의 희생양이 됐다. 국민도 분하다. 이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면서 “그래도 여러분의 억울함은 세계가 지켜봤고 알고 있다. 세상에는 타인의 오판이나 오해 때문에 눈물 흘리는 사람이 참 많다. 이들을 생각하면서 상처를 달래고 다시 꿈을 꾸라”고 덧붙이고 싶다.
나의 ‘한계’도 경신할 수 있을까
아마추어도 ‘이 순간, 이 부분에 집중하면 적중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연습을 통해 키울 수 있음을 경험한다. ‘의지력도 훈련으로 강화할 수 있다’는 실험 결과는 오래전에 나왔다. 모든 스포츠에서 멘털(정신력)이 중요하지만 이 또한 노력에 크게 좌우된다.
양궁의 기보배는 멕시코의 아이다 로만과 슛오프(연장전)까지 가서야 승부를 갈랐다. 기보배의 마지막 8점은 몇십 초 사이 국민을 낙담과 환호의 극적 반전으로 몰아넣었다. 70m 거리에서 쏜 화살의 2cm 차! 이런 간발의 우열승패는 실은 다른 경쟁의 세계에도 허다하다. 승부의 비정함이라고도 하지만 이 또한 인간 세상의 진면목이다. 피한다고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더 당당하게 승부와 대면할 일이다. 눈을 감거나 등을 돌리면 지는 거다.
스포츠에서는 극적이고 짜릿한 승부를 기대하면서 다른 현실공간에서는 경쟁 없는 세상을 바라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경쟁 없는 세상을 만들어줄 것처럼 떠벌리는 부류가 있더라도 그런 거짓말에 속으면 경쟁의 기회만 놓치고 낙오자가 되기 쉽다. 제 자식은 고액 사교육, 특목고, 해외 유학으로 출세시키면서 사회를 향해선 ‘경쟁 없는 교육’을 외치는 정치인과 교육자는 위선자다. 경쟁은 괴롭지만 신세대 올림픽 스타들처럼 ‘즐기는 법’도 배워보고 싶다.
퇴장하는 장미란에게 가장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누구나 언젠가는 정상에서 내려와야 한다. 볼트도 그럴 것이다. 영광을 뒤로하고 내려온 뒤 ‘잊혀지는 것’에 대해서도 연습이 필요할지 모른다. 인간은 쓸쓸한 퇴장을 피할 수 없다. 그것이 인생이다.
배인준 주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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