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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희의 ‘광고 TALK’]자동차 문화

입력 | 2012-08-08 03:00:00


동아일보DB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의 기술력은 이미 세계적 수준이다. 1903년에 고종황제가 미국에서 포드자동차를 사들이면서 우리나라의 자동차 역사가 시작되었는데, 글로벌 자동차 기업을 가진 우리는 이제 세계를 누빈다. 1924년에 포드가, 1925년에 제너럴모터스가 일본에 조립공장을 세운 직후부터 그 여파가 식민지 조선에도 영향을 미쳤다. 요즘 현대자동차에서 미국이나 중국 현지에 조립공장을 세워 현지에서 차를 출고하는 상황이나 마찬가지다.

포드자동차 광고(동아일보 1928년 4월 10일)를 보자. “과연!! 진가(眞價) 유감 업시(없이) 발휘되다!!!”라는 헤드라인에 “도쿄(東京) 오사카(大阪) 간 무정지 운전 성적 공표”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자동차계 미증유(未曾有·이전에 없었음)의 장거(壯擧·대단한 일)로서 전국적으로 선풍과 가튼(같은) 인기를 권기(捲起·휘감아 올림)한 도쿄 오사카 간 397리 무정지 운전은 거월(去月·지난달) 15일 오후 2시에 도쿄를 출발한 2대의 신형 포드로써 행(行)하였습니다”라며 보디카피에서 자동차 시험 주행 사실을 상세히 설명했다.

자동차 한 대를 지면 중앙에 배치하고 내구성 정확성 경제성 쾌속성을 강조하고 나서 마지막에 “배차(配車·출고)는 주문 순을 엄수합니다. 우선권을 어드랴면(얻으려면) 급히 예약하십시오”라며 주문 유도도 빼놓지 않았다. 도쿄에서 출발해 오사카까지 무정차로 주파했다며 포드의 성능을 과시하는 광고로, 마치 요즘 자동차 광고들에서 성능시험 결과를 제시하는 것과 같은 방법을 썼다.

1920년대에 자동차는 권력층의 전유물이었기에 보통 사람들은 부정적으로 인식했다. 당시 신문에서도 “자동차를 모는 부랑자”나 “황금을 뿌리는 야유랑(冶遊郞·방탕아)의 자동차”라며 부정적인 기사를 내보냈다. 그렇지만 당시 경성(서울)의 부자들 사이에서는 자동차 드라이브가 유행했다. “전신주 베러 가자”는 한강 철교 변에 늘어선 전신주 사이를 S자 형으로 꼬불꼬불 빠져나가자는 말이었고, “오즘고개로 가자”는 정릉을 거쳐 청량리 쪽으로 가자는 뜻이었다. 그런 시절을 거쳐 오늘날 우리나라가 자동차 강국이 되었다. 이제는 자동차 기술력에 버금가는 수준 높은 자동차 문화를 정착시켜야 하겠다.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