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텐트서 자고 출근… 마트서 어슬렁… 찜질방서 올림픽 응원

입력 | 2012-08-08 03:00:00

더위 먹은 대한민국




평일에도 붐비는 대형마트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양재동 농협 하나로마트 매장이 폭염을 피해 쇼핑을 나온 시민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6일 오후 서울 구로구 구로동 이마트 지하 1층. 트레이닝복이나 반바지를 입은 50, 60대 남성 10여 명이 신선식품 판매 코너를 배회하고 있었다. 이들은 쇼핑카트도 없이 맨손으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틈틈이 시식코너에서 음식을 집어 먹는 것도 잊지 않았다.

김모 씨(59)는 “몇 년 전 명예퇴직을 해 요즘같이 더우면 마땅히 갈 곳이 없다. 카페에 가면 뭐라도 하나 시켜야 하고 은행에 가도 청원경찰 눈치를 봐야 하는데 마트는 다 ‘어서 오십시오’ 하니까 부담 없이 땀을 식히고 갈 수 있다”며 겸연쩍게 웃었다.

○ 폭염이 바꾼 여름 풍속도

워낙 폭염이 심해지면서 은행, 백화점 등 예년의 ‘도심 피서지’의 인기는 시들해지고 있다. 은행 등은 정부의 절전대책에 따라 26도 실내온도를 지키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그 대신 이번 여름엔 대형마트 내 신선식품 코너가 각광받고 있다. 냉장고가 몰려 있고 신선도 유지를 위해 온도를 다른 물품들이 진열되어 있는 곳보다 낮게 유지하기 때문이다.

더위로 인한 갈증을 달래줄 수 있는 생수나 수박 수요도 크게 증가했다. 롯데마트에 따르면 수박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9.9% 증가했다. 생수와 아이스박스 매출도 각각 29.9%와 71.7% 늘어났다. 동네 슈퍼마켓에서는 오후 6시가 지나면 생수나 과일이 모두 동나 그 이후에 가게를 찾는 손님들이 빈손으로 발길을 돌리기 일쑤다. 가게 주인들은 “예전엔 생수 한두 통씩 사거나 6개들이 묶음으로 사던 사람들이 요즘에는 10개 이상씩 주문한다”며 “수박을 찾는 손님도 평소보다 2, 3배 많아져 한나절이면 다 팔린다”고 전했다.

서울 강동구 명일동의 대단위 아파트 단지에 있는 한 찜질방은 폭염이 시작된 뒤 갑절가량 손님이 늘었다. 냉방시설도 잘 갖춰졌고 벽을 온통 얼음으로 둘러싼 ‘아이스방’ 등에서 더위를 식히기 위해서다. 가족끼리 찜질방 피서를 즐기는 김정훈 씨(51)는 “집 안에서 에어컨을 계속 틀면 전기료도 부담되는데 찜질방 사우나의 시원한 냉탕에서 몸을 식히고 찜질방에 있는 초대형 텔레비전으로 올림픽 경기도 시청할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말했다.

도심 공원에서 텐트를 치고 밤을 보낸 뒤 아침에 회사로 가는 ‘텐트 출퇴근족’도 등장했다. 회사원 조모 씨(31)는 “하루 종일 아파트가 달궈져 밤이 되면 바깥에 나와 있는 것이 집 안에 있는 것보다 더 시원하다”며 “지난 일요일에는 한강공원에서 텐트를 치고 잔 뒤 아침에 샤워만 집에서 하고 출근했다”고 말했다.

○ 불청객 태풍이 그립다

폭염에 질린 시민들은 북상 중인 태풍을 응원하는 분위기다. 주말경 제11호 태풍 ‘하이쿠이(HAIKUI·중국어로 말미잘이라는 뜻)’의 영향으로 비가 내린다는 기상청 예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1994년 사상 최악의 폭염 때도 태풍 ‘월트(WALT)’, ‘브렌던(BRENDAN)’이 잠시 더위를 식히는 ‘효자’ 노릇을 한 적이 있다.

직장인 박선미 씨(35·여·경기 성남시)는 “비를 본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무더위만 계속된 것 같다”며 “태풍이 빨리 와서 비를 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관련 예보를 다룬 온라인 기사에도 ‘올림픽처럼 태풍 응원하는 것은 처음’, ‘바람은 불지 말고 더위 식힐 비만 오기를…’ 같은 내용의 댓글이 달려 눈길을 끌고 있다.

기상청은 하이쿠이가 8일 오후 중국에 상륙하면서 11일을 전후해 제주와 남해안에 비를 뿌릴 것으로 내다봤다. 북태평양 고기압 세력도 약해져 주말경에는 낮 최고기온이 30도 안팎의 평년기온을 회복할 것으로 예상했다.

태풍과 함께 불청객도 따라왔다. 태풍의 간접 영향으로 남해와 제주 해상에 풍랑주의보가 발효되면서 부산 해운대 등 일부 해수욕장에 이안류(역파도)가 발생할 개연성이 높아졌다. 기상청은 8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를 이안류 발생 위험단계로 보고 주의를 당부했다.

입추(立秋)이자 말복(末伏)이던 7일 서울지역 낮 최고기온은 35.0도까지 올랐다. 경기 이천은 35.9도, 강원 홍천은 36.3도, 전북 전주는 36.8도까지 기온이 올랐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최지연 인턴기자 이화여대 영문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