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영 경제부 기자
최근 만난 한 은행장의 집무실에는 이런 글귀의 서예 작품이 걸려 있었다. ‘재산을 쌓을 수 있는 가장 큰 길은 재산을 쌓는 가운데 신용을 얻는 것이다’라는 뜻이다. 공교롭게도 이 은행은 이 글귀를 따르고 있었다. 지난해 말부터 중소기업 대출금리를 꾸준히 내렸다. 고객들로부터 신용은 얻었지만 올해 3950억 원의 이자 수익을 포기하면서 실적도 곤두박질쳤다. 2분기(4∼6월) 순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35% 급감했다. 그런데도 이 은행은 “대출금리를 한 자릿수로 떨어뜨리겠다”고 공언한다.
이는 IBK기업은행의 얘기다. 조준희 기업은행장은 ‘밑지는 장사’에 나선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외환위기 직후 대출금리가 연 20%를 넘나들자 중소기업들이 패닉에 빠졌던 것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금리 부담이 커지는 것은 물론이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으로 심리가 위축되는 악순환이 이어졌지요. 지금도 다르지 않아요. 우리 경제에 먹구름이 오는데 고객에게 큰 힘이 되어야지요. 경제는 심리전인데, 대출금리를 올려 고객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다는 사인을 미리 보내 안심을 주고요.”
하지만 이는 일회성 이벤트에 그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대출금리 인하의 실상을 뜯어보면 잘 알 수 있다. 대부분 일반 대출금리가 아닌 최고 대출금리만 내려 신용등급이 나쁜 고객들만 금리부담이 낮아졌다. 혜택 받는 고객은 전체의 10%도 되지 않는다.
반면 기업은행은 지난해 9월 연체 대출 금리를 내렸고, 같은 해 12월 15만 곳에 이르는 대부분의 기업고객들을 대상으로 대출금리를 인하했다. 올해 8월부터는 대출금리 상한선을 내리겠다고 6월에 일찌감치 발표했다.
이런 점에서 조 행장 집무실의 글귀는 다른 은행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고객의 신용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일관된 행동(consistency)과 예측가능성(predictability)이다. 달리 말하면 ‘평소에 잘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게 바로 고객의 마음을 사고 신뢰를 쌓는 지름길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겨야 할 시점이다.
김유영 경제부 기자 ab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