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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꽃뱀 공작원에 속아… 군사기밀 유출 전직군인

입력 | 2012-08-10 03:00:00

화상채팅으로 만나 월북, 남파 뒤 간첩활동하다 검거… 서울고법, 징역 4년 선고




육군 부사관으로 8년간 근무하다가 2008년 12월 전역한 김모 씨(35). 그는 통신반장으로 일한 경력을 살려 경기 연천군에 있는 전기회사에 취직했다. 하지만 부인과 자주 다투게 되자 가상공간에서 애인을 찾기 시작했다. 2009년 5월 그는 인터넷 화상채팅으로 중국 선양(瀋陽)에 살며 열아홉 살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모 씨를 알게 돼 금세 친해졌다. 김 씨가 전화로 자신의 군대 경험을 털어놓은 며칠 뒤 이 씨는 ‘은밀한’ 제안을 했다. 이 씨는 “오빠는 전직 군인이었으니까 월북하면 북한에서 환영받을 것”이라며 “300만 원만 있으면 나랑 같이 북한에서 평생 여유 있게 살 수 있다”고 꼬드겼다. 김 씨는 이 씨가 북한 공작원이라는 걸 눈치챘지만 남한에서의 삶에 미련이 없었던 터라 월북을 결심했다.

김 씨는 곧바로 선양으로 가서 이 씨를 만났다. 며칠 같이 지내면서 잠자리도 같이했다. 이 씨와 북한에서의 새 삶을 꿈꾸게 된 김 씨는 한국에 와 차를 팔고 주택청약통장을 해약해 돈을 마련했다. 2009년 7월 다시 중국으로 간 김 씨는 두만강을 건너 북한으로 갔다. 북한에서 한 달이 넘게 거의 매일 조사를 받았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취급했던 ‘231 포병대대 전시 이동 진지’, ‘경기 연천 일대 통신중계소 위치 및 역할’ 등 2, 3급 군사기밀을 아는 대로 털어놨다. 자신이 다뤘던 암호장비 등에 대해 A4용지에 그림을 그리며 설명하기도 했다.

그해 9월 북한은 그에게 ‘미군이 철수할 수 있도록 거리 시위나 반미 서명운동을 적극적으로 할 것’, ‘북한을 찬양하는 사이트를 찾아 글을 많이 올릴 것’ 같은 지령을 내렸다. ‘보안서약서’와 ‘충성결의서’까지 제출한 김 씨는 남한으로 돌아와 친하게 지내던 현직 군인들을 찾아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동료 8명에게 “북한은 우리가 아는 것과 달리 살 만한 곳”이라며 “내가 북한 가는 법을 안다. 50만 원만 있으며 북한에 갈 수 있다”고 설득했지만 넘어오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이들의 신고를 받고 경찰에 잡혔다.

서울고법 형사12부(부장판사 최재형)는 9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김 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검찰 공안부 관계자는 “화상채팅으로 월북 대상을 포섭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며 “북한의 새로운 공작 수법인지 주목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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