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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청산 없는 韓日관계는 뿌리 썩은 나무”

입력 | 2012-08-11 03:00:00

강덕상 재일한인역사관장, 다색판화 174점 전시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만난 강덕상 재일한인역사자료관장. 조선통신사 행렬을 그린 다색판화 앞에 선 그는 “통신사의 단절 이후 일본이 침략 야욕을 본격적으로 드러냈고, 이를 표현한 다색판화 작품이 등장했다”고 설명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재일동포 100년사를 조명하는 전시 ‘열도 속의 아리랑’이 10일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개막됐다. 서울역사박물관과 동북아역사재단, 재일한인역사자료관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강덕상 재일한인역사자료관장(80)이 내놓은 다색(多色)판화 174점이다. 일본의 왜곡된 한국관과 일왕 중심 역사관의 형성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진구 황후의 삼한정벌’ 등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품도 많다.

이날 방한한 강 관장은 “다색판화야말로 일본의 역사 왜곡의 원점”이라며 “그때부터 일본인들이 우리 민족을 무시하기 시작했고, 그런 시각은 지금까지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대중적 다색판화, 즉 니시키에(錦繪)는 200여 년 전부터 제국주의적 역사관을 주입하는 수단으로 악용됐어요. 먼저 일왕을 신격화했죠. 일본은 일왕의 나라이니 중국이나 조선보다 우월하다고 강조한 겁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조선을 비하하는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일반 백성까지 정부의 정한론(征韓論)이 정당하다고 믿게 한 거죠. 이 그림들은 나중에 교과서에까지 실립니다.”

경남 함양 출신인 강 관장은 두 살 때 일본 도쿄로 이주했고 중학교 2학년 때 광복을 맞았다. 그는 “어릴 적엔 일본이 말하는 역사가 다 옳은 줄 알았다”고 털어놓았다. “수업 때 일본 영웅이 조선을 침략하는 내용이 나오면 급우들은 다 저를 쳐다봤어요. 부끄러워서 고개만 숙였습니다. 하지만 전쟁 후 일본을 점령한 미 군정이 역사교과서에서 잘못된 부분을 정정하는 것을 보면서 ‘내가 배운 역사가 사실이 아닐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역사 연구에 매진하게 됐지요.” 강 관장은 10일 전격적으로 이뤄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에 대해 “매우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과거를 청산하지 않은 미래란 썩은 뿌리를 가진 나무와 같아요. 견고하게 자랄 수 없지요. 과거를 청산해야만 두 민족의 사이는 진정 좋아질 수 있습니다.”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