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아가씨/김미선 지음/224쪽·1만3000원·마음산책
통기타와 음악다방은 명동거리를 낭만으로 채웠다. 여성들에게 명동은 소비 공간이자 노동의 공간이었으며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문화 공간이었다. 1950년대 서울 명동 한복판 쇼윈도 앞에 양산을 쓴 양장 차림의 여성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어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한쪽으로는 겹저고리 바람의 여인이 지나간다. 동아일보DB·마음산책 제공
한반도에서 가장 비싼 땅값을 자랑하는 곳, 분초를 다투며 달라지는 패션의 공간, 최대 외국인 관광객 방문지, 보행인구 최고 밀집지역…. 명동의 이 같은 모습은 7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명동이 한국에서 가장 역동적인 소비 공간이자 문화 공간으로 자리매김해왔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이도 없을 것이다.
“‘박씨’하고도 긴 듯한 쟈�을 가진 투피스 스타일이 오바코트를 입은 것보다 한층 경쾌하고 씩씩해 보인다.” 명동의 일류 양장점인 국제 양장사를 운영하던 최경자 씨가 1959년 여성지 ‘여원’ 1월호에 기고한 ‘여성들의 거리패션’ 촌평이다. 이 글을 읽은 당시 독자들이 자신의 뒤태나 옷차림에 신경 쓸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니 슬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오늘날 패션지나 여성잡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패션 분석과 팁의 기원이 1955년 ‘여원’의 패션모드 화보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겨울철 돋보이는 눈 화장법’ ‘사무실에서, 데이트 나갈 때 어울리는 헤어스타일’ 등의 기사들이 이미 1950, 60년대 잡지에 나온다. 전쟁을 겪고 난 지 얼마 안 돼 패션을 논할 만큼 일상을 되찾은 여성들이 놀랍다.
전후 여성들을 지배했던 분위기는 ‘배워야 산다, 배우고 싶다, 일하고 싶다’로 요약된다. 저자는 당시 대중매체가 경제적으로 가장 취약한 전쟁 과부들을 포함해 여성들에게 미용 재단 간호 등의 직업을 소개하면서 사회 진출을 장려했던 기사와 사진들을 통해 이 같은 분위기를 세밀히 짚어냈다.
올 초 서울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린 ‘임응식 사진전: 기록의 예술, 예술의 기록’ 속 명동 사진들과 서울역사박물관의 ‘서울 반세기 종합전3: 명동이야기’를 관람한 독자라면 한층 더 반가움을 느낄 만하다. 기존의 명동 관련 전시가 ‘명동백작’으로 불리는 소설가 이봉구나 시인 박인환 등의 눈을 빌려 명동을 남성 예술인들의 낭만적인 문화공간으로 조명했다면, 이 책은 명동에 ‘여성’이라는 젠더를 투영시켜 명동이 당대 여성들의 소비문화 노동의 장소였음을 밝혀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