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받은 조센진… 여전히 차별의 江을 떠돈다◇역사의 증인 재일조선인/서경식 지음·형진의 옮김272쪽·1만4000원·반비
재일조선인 2세 이정자 시인의 단카(短歌·일본 전통 시가로 5구 31음절로 구성) 2편.
“아이를 기를 때 기모노 입었습니다/집 얻기 위해 기모노 입었습니다/저고리를 옷장에 넣어두웠습니다/이제, 저고리 입습니다/외인 등록에 지문 찍습니다/아이에게도 찍게 합니다/그래도 손주에게는 찍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릴 적 일본에 간 재일조선인 1세 문금분 할머니가 64세 때 처음으로 글을 배워 쓴 시 ‘지문에 대해’의 일부다. 집을 얻기 위해 조선인 신분을 숨겨야 했고, 외국인 등록증에 지문을 날인하면서 범죄자가 된 것 같은 치욕을 느꼈던 질곡의 삶이 그려진다.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재일조선인의 역사와 정체성을 다룬 이 책은 양국의 근대사를 분석해 왜 재일조선인이 일본 사회에서 경계인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파고든다. 저자는 일본 도쿄게이자이대 교수로 재직 중인 재일조선인 2세.
세월이 흘러도 차별은 여전했다. 대놓고 하느냐, 은밀히 하느냐의 차이뿐. 책은 저자 개인의 경험과 재일조선인 시인의 작품, 일본 대학생들의 에세이 등을 오가며 재일조선인들의 눈물겨운 사연을 전한다.
“눈물 흘리며 문맹인 어머니를 책망했었네. 어린 날 수업 참관일의 나.” “‘일본 남자는 사랑하지 마’라며, 아버지 손에 몇 번이고 맞았다. 언니도 나도.” “일본 남자는 모두 비겁자, 겁쟁인 것을, 일본 남자만 사랑하고서 알았네.”
1947년 일본에서 태어난 이정자 시인은 재일조선인 2세의 삶에 대한 회환과 슬픔을 단카(短歌·일본 전통 시가로 5구 31음절로 구성)에 담았다. 재일조선인 3세인 배귀미 씨도 따돌림이 두려워 조선인임을 숨긴 채 자랐다. 더 큰 장벽은 대학 졸업 후 맞닥뜨렸다.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느 회사에도 들어갈 수 없었다. “면접 때 국적에 대해 어떤 질문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무시라는 차별’이죠. 결과는 모두 불합격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제가 아는 조선인 모두 자영업을 했습니다.”
▶[채널A 영상] 위안부 소녀상 테러범 “말뚝 4개 반입했다…지금도 서울 내에 있어”
책장을 넘기면서 이지메(집단 따돌림)를 두려워하는 재일조선인 어린이와 피부색이 다르다고 놀림받는 다문화가정의 아이가 놀랍도록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릴 적 어머니가 부끄러웠다”는 재일조선인의 회고를 볼 땐 “아이들이 엄마인 나를 창피하게 생각한다”며 눈물을 훔치던 결혼이주여성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차별 따위는 하지 않는 문명인”이라고 믿는 대다수 일본인의 태도에선 동남아 출신으로 한국에 일하러 온 남자와 헤어진 친구를 위로하면서 속으론 ‘차라리 잘된 거야’라고 생각했던 기자의 모습이 겹쳐졌다. 8·15 광복절을 앞두고 출간된 이 책은 다문화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예전에 발견하지 못했던 메시지까지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