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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 기자의 사람이야기]메달 꿈 키우는 서울체고 펜싱부

입력 | 2012-08-13 03:00:00

“런던서 온 금빛 희망바이러스… 다음은 우리 차례” 펜싱 키즈가 자란다




방학인데도 맹훈련을 하는 서울체육고 펜싱부 학생들. 도복 마스크 등 무거운 장비를 착용하고 칼을 쓰지만 여풍이 거셌다. 총 26명의 학생 중 여학생은 7, 8명가량 된다. “처음엔 칼이 좀 무거웠지만 곧 적응됐다”고 말하는 이들은 “부모님이 여자도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며 팍팍 밀어준다”면서 주눅 든 모습이 없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서울체육고등학교가 있는 서울 송파구 방이동으로 들어서니 아스팔트를 녹일 듯한 폭염과 함께 올림픽 열기도 뜨거웠다. 거리 곳곳에 메달을 딴 선수들의 명단이 적힌 플래카드가 펄럭였다.

9일 오전 10시 학교 4층 펜싱부 체육관에 들어서는 순간, 방학 중인 데다 이른 오전 시간인데도 비지땀을 흘리는 학생들의 땀 냄새가 코로 훅 들어왔다. 200여 평 되는 체육관은 에어컨이 돌고 있었지만 남녀 학생 20여 명의 날카로운 기합 소리가 뿜어내는 열기로 후끈했다. 양팔에 검(劍)을 쥔 모습으로 좌우로 빠르게 발 연습을 하는 모습이 TV 중계에서 보던 모습 그대로다. 서울체고는 펜싱 6개 종목 중 3개 종목에서 국내 최고를 자랑하는 꿈나무들의 산실이다.

홍순영 코치(44·중고펜싱연맹 경기이사)의 얼굴은 밝았다. “어떻게 하면 펜싱을 배울 수 있냐는 전화가 많이 걸려옵니다. 아이들에게 동기부여가 된 게 큰 수확입니다. 그중에는 대충 하다 대학이나 가자던 아이들도 있었는데 이제는 모두 ‘열심히 해서 메달을 따겠다’고 합니다.”

한국 펜싱은 이번 올림픽에서 6개 전 종목 메달(금 2개, 은 1개, 동 3개)을 따는 기염을 토했다.

훈련하는 학생들 중 김도희(18·2학년·사브르) 양희원 양(19·3학년·사브르)과 황부영(19·3학년·플뢰레) 조성혁(19·3학년·플뢰레) 홍성운(19·3학년·사브르) 정병찬 군(19·3학년·에페) 등 6명을 만나봤다. 아직은 생소한 이 스포츠를 무슨 동기로 시작하게 됐는지가 가장 먼저 궁금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체육 선생님이 펜싱부 코치였는데 체격조건이 좋다고 권유해서”(희원) “초등학교 때 태권도를 했는데 발이 빠르다고 관장님이 추천해서”(부영) “초등학교 수영 선생님이 제 운동신경이 펜싱에 맞겠다고 해서”(성혁) “달리기를 잘한다고 아빠 친구(펜싱 코치)가 권해서”(도희) 등등 대부분 비슷했다.

기자는 이들을 만나기 전 펜싱이 소수 엘리트 체육의 산물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다시 홍 코치의 말이다.

“제가 뛸 때만 해도 선수로 선발되면 무조건 태릉으로 가 집단훈련을 받았지만 10년 전부터 중고교에 펜싱부가 생기면서 달라졌습니다. 현재 중고교 130여 곳에서 870여 명의 꿈나무가 자라고 있습니다.”

계기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남자 단식 플뢰레에서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김영호)과 동메달(이상기)이 나온 것이었다. ‘펜싱 키즈’를 키우자는 국가적 목표가 세워졌고 국고와 대한펜싱협회의 지원으로 중고교에 펜싱부가 생긴 것. 물론 1차적으로는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밀어주겠다는 부모들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펜싱은 검, 마스크, 도복 상하의, 보호대, 메탈재킷, 와이어, 펜싱양말, 신발, 장갑, 장비가방 등 풀 세트를 구입하려면 초기 비용이 수백만 원은 된다. 학생들은 “도복 등은 한 번 사면 5∼10년은 쓰지만 한 자루에 10만 원을 훌쩍 넘는 검은 그동안 수십 자루를 갈아 치웠다”고 했다. 게다가 100% 수입품이다. 풍족하진 않더라도 자식들에게 이 정도 지원은 해줄 수 있는 부모들이 있었기에 이들의 오늘이 가능했으리라. 결국 한국 펜싱의 성장은 한국 경제성장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학생들에게 펜싱의 매력을 물었다. “멋있어서” 혹은 “짜릿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조명만 반짝이는 검은 무대, 은빛 칼, 표정을 감추는 마스크…세련되고 멋있잖아요.”(부영)

“‘진짜 칼을 들었다’는 생각으로 경기를 해요. 이 칼로 상대를 죽일 수도 있고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요. 찌르고 찔리는 순간 생과 사를 맛보는 운동이랄까(웃음), 머리회전도 빨라야 해요. 0.5초라는 짧은 순간에 공격과 수비 전략을 짜야 하는데 전략이 읽히면 당할 수밖에 없죠. 속이는 기술이 성공했을 때의 ‘스릴’은 정말 대단하죠.”(성혁)

“좁은 피스트(piste·펜싱 경기장) 위에 오로지 상대방과 나 둘만 있어요. 그 긴장감, 집중력, 한 포인트 한 포인트 찌를 때마다 경험하는 짜릿함은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어요.”(성운)

지금 경기장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는지, 이들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비인기 종목 선수로서 설움을 느낀 적은 없었느냐”고 물었더니 이들은 무심할 만큼 가볍게 받아 넘겼다. 승부에 매달리기보다는 운동 자체를 즐긴다는 사고가 역시 강했다.

“내가 좋아서 하는 운동인데 남들한테 인기가 있나, 없나 하는 게 뭐가 중요하죠?”(성혁)

“TV에서도 중계를 잘 안 해 주니까 아쉽긴 하지만 서운하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어요. 오히려 열심히 해서 인기 종목으로 만들어야지 하는걸요. 피겨 종목을 유명하게 만든 김연아 선수처럼 말이죠(웃음).”(희원)

“펜싱 한다고 하면 다들 멋있다고 해요. 주눅 든 적은 없어요.”(병찬)

옆에 있던 홍 코치가 “우리만 해도 어쩔 수 없이 혹은 어른들이 무서워서(웃음) 열심히 했는데 요즘 애들은 절대 억지로 안 합니다. 그렇다 보니 중도 탈락하는 아이가 오히려 줄었어요”라고 덧붙였다.

올림픽 기간에 펜싱 경기가 있는 날, 밤새워 TV 앞에 앉아 있었다는 이들은 오심(誤審) 이야기가 나오자 목소리를 높였다. 자기들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는 것이다.

“작년 요르단에서 열린 유소년세계선수권대회에서 제가 먼저 찔렀는데 상대 선수에게 유리한 판정이 났어요. 비디오 판독까지 했지만 정정을 해주지 않더라고요. 원래 아시아권 선수들에게 심판들이 점수를 잘 안 준다는 말을 들었는데 정말인가 싶어 속상했죠.”(희원)

“저도 요르단 대회에서 유럽 선수들과 경기할 때 두세 개의 오심 판정을 받았어요. 일본인 심판이었는데 같은 아시아인인데도 유럽 선수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 속상했어요. 한국에서 잘 썼던 기술이 오심 판정이 나버려 자신감이 없어졌어요.”(부영)

그럴 때마다 펜싱에 회의감을 느낀 적은 없느냐고 묻자 역시 낙관적인 답들이 돌아왔다.

“올해 4월 모스크바 유소년대회에서 단체전 3위를 했는데 미국 선수와의 경기에서 심판이 끝났다는 신호를 하지 않아 잠시 멈칫하다 찔려 버렸어요. 너무 허탈했지만 이미 악수까지 하고 끝낸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죠. 하지만 저도 제게 유리한 판정을 받은 적이 있어요. 억울한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오히려 더 열심히 뛰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죠.”(병찬)

“국내 경기에서도 오심 판정으로 억울한 적이 있었어요.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된 것 같아 아쉬웠지만 좀 더 정확한 포인트를 찍기 위해 연습을 더 열심히 하게 됐어요.”(성운)

펜싱은 상대방의 몸에 칼날이 닿으면 불이 들어오는 전자 판정방식을 채택하고 있지만 워낙 ‘찰나의 스포츠’이다 보니 양 선수의 마스크에 동시에 불이 들어올 경우 심판의 판정도 쉽지 않다.

“사람의 일이니 누구라도 실수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번에 신아람 선수의 경기를 맡았던 심판도 순간적으로 판단착오를 한 것 같아요. 공격이나 수비 지시를 내릴 때는 이상이 없다가 마지막 1초가 문제가 됐는데 사실 (경기를) 끝냈어도 되는 상황이었거든요. 설마 1초라는 시간 안에 누군가를 찌를 수 있겠냐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물론 타임키퍼의 실수도 있었고요…. 어쨌든 그 일 이후 심판들이 ‘코리아’를 보면 더 바짝 긴장해서 경기를 본 건 사실이에요.”(홍 코치)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 펜싱의 장기로 유명해진 ‘발 펜싱’ 이야기로 넘어갔다. 실제로 기자가 이날 지켜본 학생들의 운동시간 절반은 ‘풋 워크(다리운동)’에 집중됐다.

홍 코치에게 “우리의 발 펜싱 노하우를 세계가 알게 됐으니 금방 따라잡히지 않을까요”라고 물었더니 “기본적으로 너무 힘든 트레이닝이라 견디지 못할 겁니다. 신체 조건이 동양인보다 좋기 때문에 그런 훈련 자체가 필요 없다고 느낄 수도 있고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결핍’이 때로는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는 지혜가 한국 펜싱에서도 적용되는 셈이다.

3세트(1세트에 3분) 경기를 치르는 동안 약 500번의 공격을 하는 펜싱은 체력 소모가 심한 운동이다. 이날 만난 학생들의 연습량은 혹독하다고 여겨질 정도였다. 요즘 같은 방학에는 오전 10시∼낮 12시, 오후 2∼5시 운동이 이어지고 월·수·금요일에는 오후 7시∼8시 반에 야간운동까지 한다. 학기 중에는 오전 4교시 수업을 마치고 오후 2시 반∼5시 반, 역시 월·수·금요일 야간운동이 이어진다. 이들을 보며 케이팝(K-pop·한국대중음악) 한류를 만들고 있는 10대 연습생들의 집중력이 겹쳐졌다.

이날 만난 학생들은 대부분 올림픽 메달을 꿈꿨지만 그렇다고 집착하는 모습은 없었다. “좋아하는 펜싱을 할 수 있다면 코치나 심판이 되는 길도 열려 있다”고 말하는 펜싱 키즈에게선 남들이 뭐라 하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부러웠다.

● 펜싱, 아직은 먼 길

고대 로마에서 시작한 펜싱은 18세기 무렵 마스크를 쓰고 칼의 위험성을 없애고부터 스포츠가 됐다. 긴 칼만을 사용하는 현재 검법으로 틀을 갖춘 것은 프랑스에서다. 펜싱국제표준 용어가 ‘아탕시옹’(attention·차렷) ‘살뤼’(salut·인사) ‘앙가르드’(en garde·기본자세) ‘마르슈’(marche·앞으로 이동) ‘롱페’(rompez·뒤로 이동) ‘팡트’(fente·공격)처럼 프랑스어가 된 것은 이 때문이다.

근대 올림픽이 시작된 1896년부터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됐지만 아시아권에서는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플뢰레 여자부에서 루안줄리(중국)가 금메달을 딴 게 처음이다. 우리의 경우 1964년 도쿄 올림픽에 남자 3명, 여자 1명이라는 미니 선수단이 출전한 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이르러서야 사상 처음 금메달과 동메달을 땄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메달이 없었다.

유럽엔 우리식 태권도장처럼 펜싱도장이 흔할 정도인 생활스포츠이지만 우리는 저변이 얇다. 국내 펜싱 동호인은 1000여 명에 불과하다. 독일에는 400여 개 클럽에 등록선수만도 40만 명에 이르지만 우리나라의 등록선수는 1500명 정도다.

경기 종목은 찌르는 부위에 따라 플뢰레(fleuret·얼굴, 팔, 다리를 제외한 몸통만 공격) 에페(´ep´ee·마스크와 장갑을 포함한 상체 모두) 사브르(sabre·찌르기와 베기가 모두 가능하며 허리 위를 공격) 3종. 기본동작을 익힌 후 응용 동작까지 배워 경기를 하려면 6개월은 걸린다고 한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