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수석논설위원
정치적 소용돌이와 ‘돌 던지기’
박물관이 들어서는 옛 문화체육관광부 청사는 우리 현대사의 영욕(榮辱)이 담겨 있는 곳이다. 1961년 미국의 원조를 받아 바로 옆 주한 미국대사관 건물과 쌍둥이 빌딩으로 세워졌다. 시공은 필리핀 업체가 맡았다. 국내 인력으로는 어려워 외국 기술자를 불러왔다. 1960년 한국의 국민소득은 79달러, 필리핀은 우리의 3배가 넘는 254달러였다. 5·16군사정변 직후 이 건물에는 최고 통치기관인 국가재건최고회의가 들어섰고 3층에는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집무실이 있었다. 이후 1960, 70년대에는 경제기획원이 들어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 굵직한 국가 정책을 수립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앞에는 첩첩산중 같은 험로(險路)가 기다리고 있다. 이 박물관은 1948년 대한민국이 건국된 이후 우리 사회가 걸어온 길을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삼았으나 준비 단계부터 반발에 직면했다. 1919년 3·1운동 이후 해외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역할이 소외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결국 1876년 개항에서 시작해 대한제국 시절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활동을 함께 다루는 것으로 마무리됐으나 전시물 중에 ‘대한민국 건국’이라는 표현을 쓰지 못하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절충한 것은 또 다른 논란의 소지를 남기고 있다.
이 박물관은 올해 말 대통령선거와의 연관성도 피하지 못할 운명이다. 당초 개관 날짜는 내년 2월로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올해 12월 19일 대선 이후에는 현직인 이명박 대통령과 대통령 당선인이 공존하게 되므로 현 정부는 어색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11월 22일로 개관을 앞당긴 듯하다. 그러나 대선 이전에 박물관이 문을 열 경우 정치권 안팎의 공세가 예상된다. 이 박물관의 주요 테마인 경제 발전을 설명하려면 박정희 전 대통령을 다루지 않을 수 없다. 그의 딸이자 유력한 대선 주자인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의 선거운동에 이 박물관이 영향을 미치는 측면이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
산업화 민주화의 성취 보여주길
더 큰 장애물은 이 박물관에 부정적인 일부 세력의 ‘깎아내리기’다. 개관 날짜가 다가오면서 ‘극우파 보수 세력의 정신적 위안소가 될 것’ ‘박정희 기념관’이라는 거친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이 박물관이 어떤 전시 내용을 선보일지 확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보수 세력의 박물관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성급하다. ‘친일인명사전’을 만들었던 민족문제연구소는 박물관 건립을 ‘역사 범죄’라고 규정하면서 이에 맞서 일제강점기 유물을 전시하는 ‘시민역사관’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역사학계의 한 인사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식민지근대화론과 밀착돼 있다”고 단언했다. 식민지근대화론이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한국이 근대화를 이뤘다는 일부 학자들의 이론으로 이 박물관에 ‘친일’의 굴레를 씌우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 박물관은 개관 이후에도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릴 공산이 크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사회에는 현대사를 놓고 공통된 역사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가난과 전쟁으로부터 일어나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뤄냈다는 자부심이다.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나라’라는 식의 부정적인 역사관은 더는 환영받지 못한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이런 공감대를 담기 위해 탄생했고, 박물관 측은 이런 방향에서 전시물을 보여주면 된다. 일부 세력들도 밖에서 돌을 던질 게 아니라 어떤 내용을 채울 것인지를 놓고 소통과 토론에 나서길 바란다. ‘역사를 통한 화해’는 우리 사회의 절실한 과제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