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는 임기가 있지만, 경제와 민생은 임기가 없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명박 대통령의 8·15 광복절 경축사의 핵심을 하나만 꼽아달라는 요청에 이 문장을 들었다. ‘8·10 독도 방문’으로 얻은 자신감을 국정운영 동력으로 이어가 경제위기 등 국정 현안에 대처하겠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임기 중 마지막 8·15 경축사인 만큼 지난해 경축사의 ‘공생발전’ 같은 새로운 국정운영의 키워드는 제시하지 않았다. 》
○ 한일관계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인류 보편적 가치와 올바른 역사에 반하는 행위다”
이 대통령은 이날 한일 과거사 문제 가운데 위안부 문제만 겨냥했다. 이미 행동으로 보여준 독도 방문은 언급하지 않는 대신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조치를 촉구하는 ‘선택과 집중’을 택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그동안에도 위안부 문제에 대해 원론적 표현을 사용하며 일본의 태도 변화를 촉구해왔다. 올해 3·1절 경축사에선 “위안부 문제만큼은 여러 현안 중에서도 조속히 마무리해야 할 인도적 문제”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날 광복절 경축사에선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양국 차원을 넘어 전시(戰時) 여성인권 문제”라며 일본 측의 가치관과 역사관을 비판했다. 이를 뒤집어보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태도는 ‘몰가치적, 반역사적’이라는 것이다.
○ 남북관계 “이제 북한도 현실을 직시하고 변화를 모색해야 할 상황이 됐다”
北 김정은 향해 “변화 주시”… 새로운 대북 제안은 없어
남북관계가 경색돼 있는 상황에서 이날 경축사에서 새로운 대북 제안은 없었다. 임기 말 대북정책의 기조를 크게 변환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그 대신 김정은 체제에 변화를 촉구하며 “우리는 그 변화를 주의 깊게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체제 이후 이용호 총참모장의 숙청 등 북한 권력 내부의 변동과 함께 최근 경제개혁 움직임이 감지되는 것과도 무관치 않은 메시지다.
이 대통령은 또 “남북관계가 지속적으로, 그리고 건강하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남과 북이 정상적인 관계의 토대 위에 서야 한다”며 “외부적으로 나타나는 양상과는 다르게, 그동안의 원칙 있는 대북정책은 실질적으로는 상당한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고 자평했다. 그러면서 “광복의 궁극적 완성은 평화통일에 있다”며 “정부는 상생 공영의 길을 여는 노력에 더하여 통일 준비도 착실히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 경제위기 해법 “경제-민생은 임기가 없다” 임기말 국정 최우선 과제로
“경제를 살리고 민생을 돌보는 일을 최우선 순위에 놓고 전력을 쏟겠다”
이 대통령은 경제위기 해법 모색에 이번 경축사의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경제’라는 단어가 18번으로 가장 많이 등장했다. 비록 임기 6개월을 남겨둔 정부이지만 유럽발 경제위기의 먹구름을 걷어내려면 한시도 손을 놓고 있을 수 없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이 대통령이 “유로존이 선제적으로 과감한 조치를 신속히 하지 않는 한 세계경제 회복은 당초 예상한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며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도 예외일 수 없다”고 말한 것도 이런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한국이 새로운 먹거리를 찾기 위해선 ‘코리안 루트’를 개척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남을 따라가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우리가 앞장서 길을 열어가야 한다”며 “새 지평을 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창의적 발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금까지 글로벌 기업이나 선진국을 따라잡는 ‘패스트 팔로(fast follower)’ 전략에서 벗어나 우리만의 콘텐츠로 승부를 거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돼야 한다는 메시지”라고 설명했다.
○ 양극화 대책 “함께 가야 멀리 간다”
동반성장 대기업 역할 주문… “재정 여력內 맞춤복지 확대”
이 대통령은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제시한 ‘공생발전’의 기조를 이어받아 양극화 문제에 대한 해법 마련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넘어진 이를 일으켜 세우고 다시 함께 뛸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정부는 재정이 허락하는 한 맞춤형 복지를 확대하고, 일자리 창출에 전력을 기울여 왔다”며 “글로벌 경제위기로 양극화의 골이 깊어지면서 이제 공생발전 없이는 지속가능한 성장도 불가능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에 대해서도 “동반성장은 기업 생존을 위해서도 불가피하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며 “대기업 문화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함께 가야 멀리 갈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기업도, 국가도 미래 발전전략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