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에 뺏긴 것 되찾을 뿐… 필요하면 은행 점거할 수도”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역 내 인구 2700명의 소도시 마리날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국가인 스페인에서 공동 경작과 공동 분배 등 공산주의 방식을 기초로 운영되는 이 도시의 시장은 자칭 공산주의자인 후안 마누엘 산체스 고르디요(60)다. 1979년부터 벌써 34년째다.
그는 최근 유럽에서 ‘벼락 스타’가 됐다. 극심한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스페인에서 빈민층에 식량이 필요하다며 강도와 다름없는 슈퍼마켓 약탈 행위를 주도하면서 ‘현대판 로빈후드’라는 별명을 얻으며 유명해진 것. 그의 이런 행위는 살인적인 실업률과 은행 부실로 수렁에 빠진 스페인 경제위기의 단면을 보여주는 상징이 됐다.
그는 ‘슈퍼마켓 약탈’에 이어 자치단체장 가운데 처음으로 정부의 긴축정책을 거부하는 캠페인을 벌인다. 이를 위해 16일 안달루시아에서 실업률이 가장 높은 호다르에서 수도 마드리드까지 3주간에 걸친 ‘긴축 반대 행진’을 시작했다. 그는 행진을 하며 소도시 시장들과 만나 국가에 대한 부채 상환 거부, 지방공무원 해고 중단 등을 요구할 계획이다.
역사학 교수 출신인 그는 극좌파 정당 좌파연합(IU) 소속이다. 그의 사무실에는 존경하는 쿠바 혁명가 체 게바라의 초상화와 안달루시아의 깃발, 프랑코 독재로 무너진 2공화국 국기, 마리날레다 시기(市旗) 등 3개의 기가 걸려 있다.
그가 태어난 마리날레다는 1975년 프랑코 독재가 끝난 뒤 가난한 이민노동자로 구성된 350여 가구가 한 공작이 소유했던 땅을 점거하는 등 정부와 싸우며 얻어낸 땅 위에 세워진 가족형 도시다. 현재도 이 가구들이 거주민의 대다수다.
그는 시민들이 먹고살 농경지를 추가로 얻기 위해 노조를 만든 뒤 1980년부터 주말마다 집회를 열었다. 수시로 도로를 봉쇄하고 인근 말라가 시의 공공건물과 세비야 공항까지 점거하는 행동으로 7번 투옥됐으며 두 번은 극우주의자의 암살 시도에서 살아났다.
그는 12년에 걸친 장기 투쟁으로 얻어낸 이 땅에 함께 경작을 하고 소득을 나누는 협력농장 시스템을 도입했다. 올해 7월부터는 SAT 회원 1000명과 함께 지역 주민의 농장을 만들겠다며 국방부 소유의 땅을 무단 점유하고 있다. 그는 시민이 공동 소유한 땅에 국가와 시 예산으로 집을 짓고 주민은 모기지 형태로 한 달에 15유로만 내면 주택을 구입할 수 있게 했다. 대신 주택의 판매는 금지했다. 그러다 보니 마리날레다는 스페인 경제위기의 주범인 주택 거품에서 벗어나 있다. 또 사실상 완전고용에 가까우며 많은 땅을 공동 소유하고 있고 임금도 공평하게 지급된다. 자치 경찰도 없앴다. 그는 “우리는 자발적으로 함께 일하며 함께 나눈다”고 말했다.
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