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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연 한화회장 법정구속]재판부 “비자금 1000억 만들어 ‘묻지마 채권’ 456억 사들여”

입력 | 2012-08-17 03:00:00

■ 1심서 이례적 중형선고… 한화 측 “항소”




“징역 4년 및 벌금 51억 원을 선고합니다.”

16일 오전 10시경 서울서부지법 제303호 법정. 서경환 부장판사의 판결이 나오자 피고인석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는 함께 피고인석에서 재판을 받던 한화그룹 임직원 15명을 향해 몸을 돌리더니 굳은 표정으로 한 명 한 명과 악수를 했다. 그리고 경위와 함께 법정을 빠져나가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과잉수사 논란과 함께 검찰 수사 책임자가 옷을 벗었을 정도로 우여곡절이 많았던 한화그룹 총수 비리 사건은 김승연 회장의 법정 구속으로 1막을 내렸다. 한화그룹의 비자금 조성 의혹으로 시작된 이번 사건에서 법원은 검찰이 김 회장에게 제기한 업무상 배임 혐의 등 8가지 공소사실 가운데 5개 부분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

○ 내부고발에서 법정구속까지

사건의 시작은 내부고발이었다. 한화증권에 다니다 2004년경 퇴사한 뒤 투자상담사를 하며 회사 측과 거래해온 전직 직원이 자신의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2010년 금융감독원에 “한화그룹 비선조직인 ‘장교동팀’이 한화증권을 통해 300억∼500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해 관리하고 있다”는 내용을 제보한 게 단초였다. 금감원은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사건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를 거쳐 서울 서부지검에 배당됐다.

특별수사팀이 꾸려진 뒤 넉 달 만에 김 회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하며 일사천리로 진행되던 사건은 한화그룹 관계자들의 구속영장이 잇따라 기각되면서 난관에 부닥쳤다. 한화 임직원 650여 명이 소환되고 10개 계열사를 5차례나 압수수색하면서 과잉수사 논란도 일었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한 건 하려고 기업을 잡는다”는 말도 나왔다. 결국 수사 책임자였던 남기춘 서부지검장은 “대통령을 수사하는 것보다 어려웠다. 재벌은 교묘하게 수사를 방해했고 법무부도 우리를 지치게 했다”며 지난해 1월 사퇴했다. 결국 검찰은 2년여간의 수사 끝에 김 회장을 포함한 한화 임직원 16명을 불구속 기소했고 지난달 김 회장에 대해 징역 9년에 벌금 1500억 원을 구형했다.

▶ [채널A 영상] “선고 끝나고 보자” 자신만만하던 김승연 회장 결국…

○ 경제민주화 첫 ‘시범 케이스’

한화 측은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는 형량이 선고되지 않을 것으로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2008년 삼성 비자금 특검에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2003년 SK그룹 분식회계 사태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똑같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라는 형량을 선고받고 각각 139일, 78일 만에 특별 사면되는 등 선처 받은 전례가 있어서다.

법원이 중형을 선고한 것은 대기업 총수의 범죄를 더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선을 앞두고 여야가 앞다퉈 재벌 개혁과 경제민주화를 공약으로 내고 있고 재벌 총수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을 비난하는 여론이 강했던 것도 실형 선고의 배경으로 보인다. “김 회장이 경제민주화 판결의 시범 케이스가 됐다”는 말이 나온 것도 같은 이유다.

대기업 총수의 범죄를 엄단하겠다는 사법부의 의지는 판결문에서도 드러난다. 재판부는 ‘지배주주로서 영향력과 가족의 지위’ ‘범행의 최대 수혜자’ ‘신(神)의 경지로 절대적인 충성의 대상’ 등의 표현을 판결문에 넣었다.

재판부는 핵심 쟁점인 ‘김 회장이 불법을 알고 있었나’라는 것을 가리는 데도 ‘몰랐다’는 한화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찰은 “김 회장이 어머니 명의의 회사인 부평판지 부실을 메우기 위해 한화기계에 이를 인수토록 하고 24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까지 시켜 회사에 손해를 끼쳤고 차명으로 소유한 주식을 거래해 26억 원의 양도소득세도 포탈했다”고 밝혔다. 한화 측은 “경영기획실에서 주도해 김 회장은 몰랐다”는 주장을 되풀이했지만, 법원은 “평소 김 회장의 업무 수행 방식은 물론이고 (경영기획실장 사무실에서 검찰이 발견한) ‘본부 조직의 역할과 자세’라는 한화그룹 내부 문건에서 김 회장을 ‘체어맨’을 뜻하는 ‘CM’으로 부르며 일사불란한 상명하복 지휘체계를 유지한 점으로 미뤄 ‘몰랐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유죄를 인정했다.

○ 차명계좌 380개 1000억 원

판결문에 따르면 한화그룹은 380여 개 차명계좌를 운용하면서 1000억 원의 자금을 관리해 왔다. 서울 중구 장교동의 한화그룹 본사 빌딩 26층에 있는 회계2파트 사무실 내 금고에서는 차명계좌에서 인출된 것으로 보이는 79억6000만 원의 현금이 발견됐다. 한화그룹은 이 돈으로 ‘묻지마 채권’ 456억 원어치를 매입하기도 했다. 김 회장의 부인은 차명계좌에서 인출한 돈으로 2008년경 시가 60억 원 가치의 게르하르트 리히터 추상화를 구입하기도 했다.

박승헌 기자 hparks@donga.com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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