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엔 비질 자국… 문틈새 염불소리… 모든걸 내려놓다
그 편안한 동쪽 마을로 가는 길은 언제나 즐겁다. 수려한 산천과 함께 많은 문화유산을 만나볼 수 있기 때문이다.
○ 꽃이 비처럼 쏟아지는 누각
하지만 나는 봉정사를 찾는 즐거움은 암자인 영산암 덕분에 배가된다고 생각한다. 영산암은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라는 영화의 배경이 되면서 널리 알려진 곳이다. 한때 유명세로 몸살을 앓기도 했지만 이제는 고즈넉한 편안함을 되찾은 듯싶다.
영산암은 암자치고는 본사에 가까이 자리 잡고 있다. 봉정사 금당이 있는 중심 영역을 우회해 높은 계단을 오르면 이내 영산암의 입구인 우화루(雨花樓)가 나타난다. 꽃이 비처럼 쏟아진다는 뜻의 2층 누각이다. 우화루 아래 출입구는 높이가 좀 낮은 편이다. 웬만한 키의 사람은 고개를 약간 숙여 지나야 한다. 이를 두고 ‘부처님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게 고개를 숙여야 한다’는 해석을 내놓는 이들도 있다.
○ 암자 마당에 새겨진 시간의 물결
우화루 입구를 지나면 영산암 안마당이 눈높이에 나타난다. 영산암은 역시나 아름답다. 아니, 아름답다기보다는 아늑하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다. ‘ㅁ’자형 구조의 영산암 마당은 단층이 아니라 3개 층의 복합적 구조로 이뤄진 것이 특징이다. 반송과 배롱나무가 마당들의 경계가 된다. 높이 차에 따른 마당의 구획들과 그 경계에 서 있는 나무들은 더없이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어느새 걸터앉은 툇마루에는 여름날의 뜨거움을 예고하는 희미한 온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서서히 그늘이 작아졌다.
하루가 움직이고 있다. 고요하다. 시간이 영산암 마당에 소리 없는 파도를 만들고 있었다. 등 뒤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낮은 염불 소리마저 내게는 침묵처럼 느껴졌다.
자리에서 일어나 떠날 준비를 했다. 그나저나 달마는 왜 동쪽으로 갔을까? 내가 영산암에 온 것과 같은 이유일까? 피식, 기분 좋은 웃음이 새 나왔다. 그 웃음은 편안한 고장의, 편안한 마당으로 보기 좋게 흩어져 사라졌다.
이장희 일러스트레이터 www.ttha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