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토를 꿈꾼 그들-정민 교수의 삼국유사 깊이 읽기/정민 지음·변명환 사진376쪽·1만8000원·문학의문학
삼국유사에 원효의 라이벌 의상이 관음보살을 만나고 창건했다는 설화가 실린 강원 양양 낙산사의 칠층석탑. 반면 원효는 두 번이나 관음보살을 몰라본다. 정민 한양대 교수는 이처럼 삼국유사에 원효의 굴욕기가 많은 이유를 역설적으로 원효가 최고의 승려였기 때문이라고 풀었다. 문학의문학 제공
정민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신간에서 선화공주는 분명 무왕과 결혼했으며 미륵사 창건을 추진했고, 다만 완공 훨씬 전에 세상을 떴기에 사리봉안기에는 완공 당시 왕후였던 사탁씨 이름만 남았다고 주장한다. 또 의자왕의 생모는 사탁씨가 아닌 선화공주라고 덧붙인다. ‘삼국유사’와 ‘일본서기’ 등을 두루 분석한 결과다.
다산 정약용, 연암 박지원 등 18세기 조선 지식인과 한시에 관한 다수의 저서로 대중에게 친숙한 저자가 이번에는 삼국유사를 파헤쳤다. 삼국유사 원전 읽기를 시도하다 번번이 포기했어도 좌절할 것까진 없다. 저자도 학생들과 함께 삼국유사를 읽을 때마다 난독증의 울렁거림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삼국유사에는 알쏭달쏭 종잡을 수 없거나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많다. 그러나 저자는 “황당한 이야기 속에 진실이 숨 쉰다”며 삼국유사를 가리켜 “상상력의 보물창고이자 우리 문화의 비밀을 푸는 집 코드(zip code)”라고 말한다. 그리고 미로처럼 얽혀 있는 삼국유사 속 이야기들의 의미를 불교를 중심으로 풀어간다. 삼국유사를 ‘열린 텍스트’로 보고 여러 사료들을 참조해 저자 나름대로 해석을 시도한 책이다.
삼국유사에 담긴 비밀의 코드를 저자와 함께 추리해가는 과정이 신선하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과학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그 안에 온갖 인간사의 은유와 상징이 담긴 것과 비슷한 이치다. 삼국유사를 처음 읽는 독자라면 원전을 읽기 전에 길잡이로 삼을 만한 책이다. 책을 들고 옛 백제와 신라 지역을 여행하면 잊혀진 왕릉이나 쓸쓸한 절터도 달리 보일 것 같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