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전 문화재 위원
1900년 10월 25일 대한제국 칙령 41호로 울릉도를 강원도 울릉군으로 승격시키면서 독도는 한국령으로 확실하게 편입되었다. 하지만 1905년 1월 28일 일본의 시마네 지방정부는 한 물개잡이 어부가 제출한 독도 편입 청원을 그대로 받아들여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자기네 영토로 만들어 버린다.
시정을 요구하고 외교문제로 삼아야 했음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강제병합 직전의 대한제국은 시비를 따지고 문제 삼을 여력은 물론이고 중요성을 알아차릴 선각자는 더더욱 없었다.
하지만 250만∼270만 년에 이르는 영겁의 역사를 가진 독도는 나무 한 포기의 자람도 내내 거부해 왔다. 그러다 1905년경 일본의 독도 불법 편입 무렵에 사철나무에게만은 비로소 정착을 허락한다. 우리에게는 우연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1905년의 불법 편입을 알아차린 혜안에 가슴 뭉클한 깊은 감동을 준다.
독도 사철나무는 어디서 왔는가? 주인공은 울릉도에서 씨앗을 따먹고 독도에 날아와 ‘실례’를 한 철새들이다. 사철나무는 동그란 열매 안에 주황색 팥알 굵기의 씨앗이 들어있다. 붉은색 계통이라 새들의 눈에 잘 띄고 배고픈 계절의 먹이가 된다.
독도 바위틈에서 사철나무 씨앗이 싹틔우고 살아가는 과정은 마치 나라를 잃고 고통 받는 민초의 삶과도 대비된다. 사철나무의 수명은 대체로 300년쯤이니 일제강점기 동안의 독도 사철나무는 사람으로 치면 유년기였던 셈이다.
비옥한 땅에서 충분한 수분 공급을 받는 행복한 유년이 아니었다. 짠물과 바람, 지독한 가뭄을 혼자 견디면서 간신히 목숨만 부지하다 광복을 맞는다. 혼란기와 전쟁을 거치고 1953년 4월 20일 독도의용수비대가 우리 땅임을 확인하는 과정을 바라보면서 조금씩 몸체를 불려갔다.
광복절을 맞아 문화재청은 동도 천장굴 사철나무를 천연기념물 문화재로 지정하기로 했다. 독도를 몰래 일본 땅으로 편입할 때 처음 뿌리를 내리고 온갖 역경을 극복하여 가장 오래된 고목이 된 이 사철나무는 이제 귀중한 문화재로서 독도의 정신적인 지주가 될 영목(靈木)이다.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전 문화재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