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논설위원
일왕 언급에 경악…神政국가인가
“아키히토(明仁) 일왕도 한국을 방문하고 싶으면 독립운동을 하다 돌아가신 분들을 찾아가서 진심으로 사과하면 좋겠다”는 우리 대통령의 발언에 일본 열도가 뒤집힌 모양이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곧바로 독일제국의 이름으로 이뤄진 모든 죄과를 국가적 차원에서 사죄했고, 물질적 정신적 보상을 해 왔다. 1970년 빌리 브란트 독일 총리가 폴란드 바르샤바를 방문해 유대인 희생자 기념비 앞에서 무릎을 꿇은 사진은 다시 봐도 뭉클하다.
개인이라면 죄의식이 없을 수도 있다. 유대인 대량학살의 책임자인 카를 아돌프 아이히만도 법정에서 “상부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했을 뿐”이라고 뻔뻔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독일은 책임을 피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상국가’가 될 수 있었다. 유로존 위기가 닥치자 과거 전쟁으로 못 꺾었던 나라들을 경제로 무릎 꿇게 만든 힘도 여기서 나왔다.
일본이 독일처럼 못 된 이유를 “독일은 1945년을 ‘0시’로 삼아 과거와 완전히 단절했지만 일본은 못 했기 때문”이라고 이언 부루마는 ‘죄의 값’에서 지적했다. 천황제를 통해 자신들이 신의 민족이라고 믿어 온 일본인은 패전 후에도 천황제를 유지함으로써 민족적 우월성을 고수한다. 때론 노골적으로 이웃나라를 멸시하는 것도 이들에겐 당연하다. 명령과 복종을 끔찍이 여기고, 전체주의와 집단의식에 젖어 민주주의와 잘 맞지 않는 기질도 이와 무관치 않다.
10년 전까지 일본처럼 환상 속에 살던 나라가 또 있었다. 합스부르크 황실의 찬란한 역사를 자랑하는 오스트리아다. 나치 독일에 기꺼이 합병된 오스트리아는 독일 뺨치게 유대인 학살에 열을 올리고도 패전 뒤에는 ‘나치의 피해자’를 자처했다. 그러고는 영세중립국을 표방하고 경제에 매진해 선진국으로 변신했다. ‘원폭 희생자’라면서, 우리나라보다 더 불쌍하고도 평화를 사랑하는 모습으로 미국과 경제에 매달린 일본과 참으로 비슷하다.
지크문트 프로이트의 나라답게 오스트리아는 불쾌한 기억을 무의식 속에 묻어 두는 ‘억압’ 기제에 능했다. 나치에 협력한 정치인과 관료들이 전후에도 고위직을 차지했고, 학교 역사시간엔 2차대전 전까지만 가르칠 정도였다. 굴욕을 참느니 차라리 할복하는 일본의 사무라이 문화는 억압 기제의 극단적 발현이다. 만행을 저지른 세대는 의도적으로 과거를 버렸고, 젊은 세대에게는 아예 알리지 않았다. 따라서 진심으로 사과를 할 것도 없는 기형적 상황이 된 셈이다.
사람이 사람을 중히 여기는 인류 보편의 가치와 너무나 먼 이런 나라는 정상국가라고 하기 어렵다. 오스트리아도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쿠르트 발트하임이 나치에 복무했다는 것을 알면서 1986년 대통령으로 뽑는 ‘공범의 시절’이 있었다. 1999년엔 나치 고위직 출신이 낀 극우정당을 제1당으로 만들 만큼 이 나라 사람들은 죄의식 제로 속에 살았다.
이런 나라를 정상국가로 돌려놓은 것이 2000년 유럽연합(EU) 14개 국가의 압력과 미디어였다. 유대인의 집단배상소송까지 쏟아져 엄청난 배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는 고립될 수 없었던 오스트리아는 2002년 총선에서 극우당을 몰락시킴으로써 비로소 독일처럼 됐다는 평가를 얻을 수 있었다.
일본이라고 이런 압력을 안 받는 게 아니다. 미국 캐나다 유럽의회 등 전 세계가 일본의 ‘군 성노예’ 강제행위를 비판하고 있다. 그런데도 국가적 잘못을 인정하고 인류 보편의 가치로 돌아서기는커녕 일왕을 언급한 것만으로도 온 나라가 뒤집어진다는 건, 일본이 많이 아프다는 증거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