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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신광영]교도관의 두 모습

입력 | 2012-08-20 03:00:00


“고문 수사관이 3명 더 있다는 비밀을 지켜 주면 가족의 생계를 보장해 주겠다. 그러지 않으면 출소해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1987년 3월, 박종철 군 고문치사 혐의로 구속된 경찰관 2명을 면회 온 경찰 간부는 1억 원이 든 통장을 보여 주며 회유했다. 당시 면회를 참관한 서울 영등포교도소 안유 보안계장은 두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사건을 축소 은폐하려던 현장을 목격했다. 그는 수감 중이던 이부영 전 의원에게 이 내용을 귀띔했고 이 전 의원은 이를 편지로 써 한재동 교도관에게 전했다. 교도소 밖으로 나온 편지는 천신만고 끝에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 도착했다. 그해 5월 18일 경찰의 꼼수가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독재정권의 종말을 앞당겼다.

▷민주화에 기여한 교도관들이 적지 않아 ‘민주교도관’이란 말도 있다. 1975년 김지하 시인의 ‘양심선언’은 전병용 교도관이 그 문건을 가지고 교도소 담장을 넘어준 덕분에 세상에 알려졌다. ‘중앙정보부가 나를 공산주의자로 조작했다’는 김 시인의 폭로에 사르트르, 하버마스 등 저명한 해외 지식인들이 지지서명을 했다. 공안 당국은 국제적 비난에 직면했다. 체코에서 반독재 투쟁을 하다 처형된 율리우스 푸치크의 옥중수기 ‘교수대로부터의 리포트’도 원고를 한 장 한 장 밖으로 옮긴 교도관 코린스키의 용기가 없었으면 햇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민주교도관과는 질적으로 다른 교도관의 행태도 있다. 서울구치소 한모 교도관은 민주통합당 박지원 원내대표에게 저축은행 비리 수사 상황을 누설한 혐의로 감찰조사를 받고 있다. 그는 솔로몬저축은행 임석 회장과 보해저축은행 오문철 전 대표가 검찰조사를 받고 오면 조사 내용을 파악해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한테 8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박 원내대표에겐 요긴한 정보였을 것이다.

▷교도관은 법을 집행하는 최일선에 있다. 사형 집행을 안 하면서 흉악범 사형수들은 교도관과 함께 일생을 마쳐야 한다. 교정(矯正)은 말 그대로 하면 굽고 비뚤어진 사람을 바르게 펴는 직업이다. 높은 담장 안에서 수인과 같은 생활을 하니 직업으로서 인기가 없을 것 같지만 지난해 교정직 경쟁률이 남자는 24 대 1, 여자는 55 대 1이나 됐다. 교도관 선발 과정에서 정의 실현의 사명감과 인권의식도 치열하게 검증받는지 모르겠다.

신광영 사회부 기자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