疑: 의심할 의 則: 곧 즉 傳: 전할 전 疑: 의심할 의
과거의 권위에 대한 맹목적인 신봉보다는 스스로 검토해 보아 그 타당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그대로 남겨두어 후세의 정확한 판단을 기다리게 한다는 사마천의 역사서술 원칙 가운데 하나다. 사마천은 ‘삼대세표(三代世表)’의 서문의 끝에서 자신의 작업을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전설상의 황제로부터 공화정에 이르는 삼대(三代)를 표로 기록하면서 은나라 이전의 제후에 관한 일은 자료를 구하여 보첩(譜諜)으로 만들 수 없고 주(周)나라 이전의 역사만 겨우 기록할 뿐이라고 하면서 노나라의 역사는 공자가 편찬한 춘추(春秋)라는 책에 의거해 시간과 일월을 바로잡았는데 비교적 상세한 결과를 도출했다고 말한다. 그러고는 다시 말한다. “순서에 따라 엮은 상서(尙書)는 간략하여 연월이 없는데, 간혹 나타나 있는 곳도 있으나 대부분 없어진 데가 많아 기록할 수 없다. 그래서 의심스러운 것은 의심이 나는 대로 전하였으니 아마도 신중하다고 할 것이다.(至于序尙書則略, 無年月, 或頗有, 然多闕, 不可錄. 故疑則傳疑, 蓋其愼也)”(사기 ‘삼대세표’의 서문) 사마천은 상서에 대해서는 기록의 정확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신중한 역사서술을 위해 의심나는 부분은 그대로 두고자 했다고 했으니, 오제의 시대는 대단히 오래되어서 그 연월일을 표시할 수는 없었으므로, 황제 이래 공화정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을 세대별로 표시하여 적어나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사실상 사마천이 황제 이래의 연수를 배제하고 세계(世系)만을 기록하고 있으니 의심나는 것은 의심나는 대로 내버려둔다는 엄밀한 역사집필 원칙에 근거를 둔다. 사마천은 참조할 자료가 현저히 부족하거나 전혀 없는 이 연표를 작성하는 데 적지 않은 애로가 있었을 것이고, 설령 구했다고 해도 판본마다 상이한 자료가 있어 힘겨운 작업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의즉전의’의 역사서술 원칙은 사마천이 연표뿐만 아니라 사기 130편 전편에 걸쳐 적용되는 일관된 것이며, 이런 원칙은 그가 적지 않은 사료의 인용뿐만 아니라 직접 답사하여 취재하는 과정에서도 거의 예외 없이 적용되었다.
김원중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